반쪽짜리 아마추어 무선

오늘도 VHF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마추어 무선(HAM)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일반인들이 취미 목적으로 무전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을 하는 것인데, 원래 이런 교신이 전세계 무선통신의 시초였다고 한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무선통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연구자들과 아마추어들이었으니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게 발달해서 현재의 CDMA나 LTE가 된 것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무전기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안테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하는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자유민주국가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무선을 허용해주고 있고, 이들을 위한 공용 주파수도 제공을 해주고 있다(주파수는 국가의 재산이다). 원래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무전기와 안테나를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 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맑고 깨끗한 음질로 먼 지역까지 교신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는데, 한국에서는 ‘무전기와 안테나등 제반 설비에 대한 임의 변경’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그냥 무전기로 교신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래도 북한과의 문제가 있어서 다른나라보다도 훨씬 엄격한 제한이 걸린 거겟지.

음.. 난, 그냥 시작했다. 이거 하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거다. 난 아마추어 무선 3급 전화급 자격증을 수년전에 땄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시도해보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90년대 말부터 아마추어 무선은 급격한 세퇴기를 맡고 있으며, 현재는 고령의 무선통신사를 제외하고는 내 나이대의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는 나 같이 괜한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무전기가 아까워서 계속 교신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스포츠 목적으로 좀 더 출력이 높은 무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뭐… 스마트폰에 비교해서 아무 장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나마 장점이 한가지 있다면 지난번 KT기지국 화재처럼 통신망이 끊겨버린 상황에서도 무전기를 통해 자유로운 교신이 가능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재난상황에서 고출력의 무전기를 이용해 더 먼 지역에 재난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의 장점만 남아있다고 하겠다. 근데 그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없으니. ㅋ

생각보다 깨끗한 음질로 교신이 가능한 아마추어 무선은 다음의 제약이 있다

  •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시설에서는 옥상이나 베란다에 거대한 안테나를 설치할 수 없어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에 심한 제약이 따른다
  • 통신법에 따라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다른 사람의 소식을 대신 전해줄 수 없으며, 교신중에 암호문과 같이 교신하는 사람들만 아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고 반드시 평문으로 교신을 해야하며,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고, 특정 물건이나 사업체에 대한 칭찬이나 광고성이 담긴 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음담패설, 욕, 비방을 할 수 없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현재의 휴대전화는 통화내용이 기계에 의해 암호화가 되어 전달되는 방식이라 정확한 키(전화기의 고유 아이디)를 알지 못하면 통화내용을 남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 무선은 북한과의 대치문제로 암호화된 교신을 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평문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다. 거기다 이런저런 교신내용에 대한 제약조건이 있어서 일상적인 이야기라든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결국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이야기라든가 날씨 이야기, 무전기 장비 이야기 정도 말고는 할 말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 일단 설치해 놓으면 전기비 말고는 아무것도 드는 돈이 없는 공짜 통신인데 이런 제약으로 인해 할 수 있는게 극히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만약 누가 나에게 ‘아마추어 무선사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근 후회하지!’라고 말 할 것 같다. 베란다에 남들 눈치보면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고, 비싼 무전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니까 말이다. 나도 뭐.. 일단 구입한 물건이니 아깝기도 하고 근처에 나와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저씨가 있으니 하는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버려두고 근처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선배 무선사들은 해외의 무선국과 교신한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주거 상황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파트 옥상에다가 20m짜리 안테나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누가 허락해줄까)

아무튼 그렇다. 이제는 슬슬 사라져가는 취미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고, 나 역시 이미 발을 담가버렸으니 꾸준히 하고 있는 그런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만약 내가 아주 높고 외딴 지역에 혼자 살고 있다면 하루종일 무전기를 붙잡고 살았겠지만, 인터넷이 이렇게 잘 되는 세상에서는 그저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 하며 지내는 자그마한 장난감 같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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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무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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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자잘한 일들을 끝내고 무전기를 켜봤다. 물론 택배로 새로운 안테나와 케이블이 왔기에 더 먼 곳으로 교신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며 기다렸다.

…..

아무도 없네? 물론… 아직 무선국의 변경승인이 안나서 허용출력으로만 교신을 시도한 것이지만, 아무도 없어서 조금 섭섭했다. 나 오늘 안테나 샀다구!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대답없는 저녁. 실제로 개인 휴대전화의 출현으로 상당수의 HAM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더 적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말을 걸어봐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다행인 날이고, 대부분은 아예 소리소문 없다. 물론 VHF라는게 대기에 반사되어 멀리 날아갈 수도 없고, 건물이 막고 있으면 거의 다 흡수되어버리는 가슴아픈 주파수지만, 단파대역(HF)를 사용할 수 없는 나같은 아파트 전세 생활인에게는 유일한 교신주파수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초단파(VHF)대역은 반경 30km정도를 통달거리로 보고 있는데 한 시간 정도 CQ를 날려도 아무 소식 없는 것 보면 내가 아파트에 살아서라기 보다는 그냥 ‘사람이 없는’ 것 아닐까 싶다. 뭐… 교신이 간신히 되어도 대부분 50대 후반이나 60대니까 그건 그것대로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오늘도 한 두 세시간 무전기를 켜보았는데 아무 소식없다.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대답없는 VHF밴드를 보고 있으니, 조만간 협회도 쪼그라들고 사용가능 주파수대역도 점점 더 빼앗기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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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신 성공!

VHF에서 첫 교신 성공!

솔직히 기대도 안하고 CQ 를 날렸다. 3일 동안 아무도 연락이 없었는데 오늘은 수신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지. 다만 하나 기대가 있었다면 오늘은 토요일이고, 점심시간이니까 누군가는 무전기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속에 해 본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이나 만나게 되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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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다 반경 10km 내에 계시는 분이었고 아파트 넘어 저~ 쪽에 있는 분들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전파가 두 분에게 통한 것이다. 참 묘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기쁜 마음에 첫 교신을 알렸고 두 분 다 축하해주셨다.
이야기야 뭐… 내가 첫 교신이다 보니까 축하 인사와 장비 보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두 분 다 처음에는 가벼운 핸디로 시작하셨다가 점점 장비를 늘려서 지금은 강한 신호로 교신이 가능한 상태인 것 같았다. 조금 부럽기도 하고… 또 궁금한 것도 많고.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긴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