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원래 오늘 수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투석기가 돌아가며 조금 안정이 되어서 ‘아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수술을 준비했다. 누가 뭐래도 화상은 상처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생존기회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어제내내 수술 준비를 했고, 모자란 혈액은 수혈도 하고 약물도 투여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저녁에 퇴근하는데 인턴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들이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알았지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전산에 들어가서 수술 스케쥴을 지우고 고가의 진통제를 처방에서 제외시킨 후 몰핀을 처방했다.

의료법과 각종 판례에 따라, 일단 시작한 치료를 중단할 방법은 없다.
현행 치료를 중단하면 내게 살인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가 아닌 바에는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싶더라도 향후 24시간 내에 사망가능성이 극히 높지 않으면 연명치료조차 거절할 수 없다. 법이란 것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해서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자는 CRRT 덕분에 세 종류나 사용하던 승압제(강제로 혈압을 올리고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약)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이고 열도 나지 않고 폐도 상태가 좋아졌다.
냉정하게 보아서 이 상태면 현재 치료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리고 세균이 다시 몸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사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아주 애매한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난 이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고,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다. 그냥 이대로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질환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화상에서는 흔하다.
대체 왜!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돈은 생명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따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 세상을 덜 살아도 한참 덜 살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돈을 벌어 돈을 쓰고 살고 있다. 먹는 것도 돈이고, 입는 것도 돈이고, 수도, 가스, 주거 그 어느것 하나 돈이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모든 의료행위 역시 돈이 든다.
물론 정부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당신들이 보장해 준다는 그 의료보험에는 실제 화상치료에 필요한 물품의 30% 정도만 보장을 해주고 있다. 다시말해 나머지 70%는 온전히 본인부담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화상환자에게도 암환자와 동일하게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해주고 있지만 이 5%는 의료보험공단에서 인정하고 있는 급여항목만 해당이 된다. 근데… 시간이 흐르며 정말 다양한 치료재료가 등장했고 공단은 진짜 중증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재료 중 어떤 것도 급여화 시켜주지 않고 있다.

보통… 화상범위가 70%를 넘어가면 총 본인부담금이 2억 정도 나온다.
2억. 현물도 부동산도 아닌 온전한 ‘현금’으로 2억이 필요하다. 은행잔고를 열어보라.
과연 우리 중에 몇 명이나 현금 2억이 예금잔고로 있을까.
그래도 산업재해라든가 실비보험, 또는 개인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어느정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서 치료의 여지가 있다. 근데… 나처럼 민간의료보험 하나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2억을 내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 돈을 마련해서 치료비를 낼 의향이 있는가?

중증화상환자를 볼 때 항상 두번째 면담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냉정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픈 사람도 살아야 겠지만… 남은 사람도 살아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보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치료를 포기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평생동안 같이 지내왔던 가족이 아프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돈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치료만 했지. 그러다.. 어느 환자를 봤다. 남편이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아내가 열심히 치료비를 마련해서 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퇴원할 때가 되어서 이야기를 들으니 딱 하나 있던 전세금을 빼서 치료비를 대었다고 했다.
…. 그 환자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남편은 낫기는 했지만 예전같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게 되었고 집도 사라졌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본에 갈 예정에 있고, 오늘이 환자 치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난 아주 심한 두 명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단 하나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분들에게 어떤 비난도 할 생각이 없다.
오늘, 보호자분들을 만나서 말하겠지만 환자를 위해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그냥…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뿐이고,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보듬어 주려고 한다. 앞으로 이 사람들은 평생 가슴에 이 일을 묻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냥.. 그런거다.

Just Do It

2019년 5월 19일 07:49
환자분 한 명이 사망하셨다. ARDS가 간신히 풀려가는 과정에 패혈성 쇼크(세균이 신체에 유입되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가 겹쳐 버렸다. 밤새 4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했고 결국 이른 아침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평소와 동일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심폐소생술 초기부터 아예 심장이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환자는 떠났다.

중증 화상을 보는 입장에선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힘들었다.
이 환자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공부를 하러 온 교환학생이었다.

의사를 하며 혼자 갖게 된 불문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외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싸우다 칼에 맞아서 왔고, 어떤 사람은 홧김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은 헤치려고 하다가 자기가 다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재판관이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일이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내 일은 아니다. 괜히 그런 정보를 알아 봐야 선입견만 생기는게 사람이라 더욱 조심하고 어쩔때는 일부러 모른척 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취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태에 빠졌는데, 그 나머지 한명조차 시신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하는 말이지만, 본국에서 여기까지 달려 온 환자의 아버지와 형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 역시 정말 이 환자를 살아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

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째서 사망했는지 계속 고민했고 살아남았던 과거의 다른 환자들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계속 생각했다.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생각. 그걸 하루 종일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과거에 얽매여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돌아가신 환자분 보다 조금 더 먼저 병원에 온, 더 넓은 범위의 환자분이 내 환자로 누워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 역시 상태가 매우 안좋아서, 어제부터 응급 투석을 시작했다. 지속적 신대체 요법이라고, 사람만한 크기의 기계가 24시간 내내 천천히 환자의 몸에서 피를 뽑아 정화하고 다시 넣어주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른다. 오늘 아침 피검사는 이 환자분 역시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줬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폐 기능도 좋아지고 신장수치도 떨어졌지만 간 수치가 급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흔히 말하는 다발성 장기부전. 전신상태가 악화되며 혈류가 덜 흐르면서 신체의 주요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양상이 검사상의 결과에서 보였다.
어쩌면… 더 상태가 심각한 환자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 보다 조금 덜 신경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제 이 분 밖에 남은 환자가 없고, 어떻게든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살려낼 힘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1초에 한 명이 태어나고 있고, 3초에 한 명이 사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조용한 토요일

토요일 당직이라 병원에 있다.

대충 새벽 다섯 시 정도에 일어나 병원에 나왔는데 원래 이 시간에 근무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어제 자정까지 환자 상태가 안좋아서 계속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아침되어 바로 튀어 나온 것이다. 새벽 6시 정도에 도착해서 환자 피검사 결과 보고 한참 고민한 후 이것 저것 처방을 넣었다.
원래는 너무 일찍 일어났으니 대충 일 끝나면 자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니 잠도 못 자고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환자가 안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이 안좋다’.
역시 범위가 넓어서 그런가 몸 상태가 들쭉날쭉 하고 어제부터는 ARDS(급성호흡곤란 증후군 :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폐 자체가 부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잘 안되는 것)이 발생해 두 환자 다 경계선에 걸쳐져 있다. 이유야 뭐 길게 볼 것 없이 화상과 그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한 명은 다음주 월요일까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2주 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개인 사정으로 목요일~일요일까지 한국에 없고. 이미 확정된 일이라 바꿀 수도 없고 여러모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다.

한 명은 외국인이라… 그리고 나이가 젊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다. 다치고 이틀인가 삼일만에 온 것이니까 이야기 듣고 바로 비행기표 구해서 급하게 비자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환자는 의식도 없고 (완전히 재워놨다) 얼마나 답답할 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뭐.. 다른 한 명도 보통의 사정으로 다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많이 된다. 단지… 다치게 된 경위가 너무 기구해서 여기다 쓸 수 없어 그렇지.

아무튼 오전 내내 혼자 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무신론자라 어디 빌 데도 없지만 그냥 혼자 중얼중얼 거렸다. ‘환자 좋아지면 좋겠다’ ‘나아지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진짜 어디 게임에나 나오는 마법 포션같은게 있으면 얼른 사서 벌컥벌컥 먹이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 짜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고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발 이번 주말 잘 버티고 수술 받을 수 있게 되고, 내가 외국 다녀온 다음에도 멀쩡하게 살아있기를 빈다.

배수의 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전부터 고통받던 문제인데, 난 상당히 강박적인 성격이다. A라고 했으면 A가 되어야 하고, A’가 되어버리면 그걸로 스트레스 받고 고통받는 성격이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강박적이라 이런 성격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다른 얘기지만 이런 성격으로 결혼까지 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아내님에게 감사하고 있다.

환자가 둘 있다. 하나는 전신 75%의 화상이고 다른 하나는 전신 60% 정도의 화상이다. 둘 다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고 있고, 두 명의 환자 때문에 난 앉으나 서나 계속 환자 걱정을 하고 있다.
뭐 걱정이라고 해봐야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것은 아니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째서 지금 소변이 이것밖에 안 나오는지, 왜 열이 떨어지지 않는지, 왜 혈압이 안정되지 않는지, 이런 것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화상환자들은 살아 있는 것 만으로도 환자분께 감사할 노릇이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한다.

환자는 높은 수준의 진정제와 진통제로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보호자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실수하면 나는 괜찮지만 환자는 잘못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재미로 하는 장기라면 한 수 물러달라고 졸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 싸움에는 뒤가 없다. 어떻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경우이고 보통의 경우 단 한 수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가 극에 닿는 상황이 되면 도망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모른채 하고 싶어진다. 마음 한 구석에서 차라리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모든걸 포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고작 일주일 정도 흘렀지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끝임없이 흝고 지나가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쉬고 싶고, 생각하기 싫고, 도망치고 싶고. 차라리 핵전쟁이 일어나서 온 세상이 뒤집어져 버리면…
그런데… 나는 쉴 수 있고, 도망갈 수 있지만 환자는 아무데도 못 간다. 다시 말해 뒤가 없는 상황이다.

배수의 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의식이 없는 환자의 치료를 대표하고 있고, 내가 쓰러지면 환자도 쓰러진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한 배를 탔다면, 그리고 뒤가 없다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피곤하다. 그렇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환자가 좀 안좋다

사실은 처음부터 계속 안좋았지만

반복된 음주는 간경화와 각종 간질환을 유발합니다…. 라고 술병에 적혀 있었던가?
가뜩이나 전신 80%나 되는 화상이라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는데, 이놈의 술이 환자의 몸을 갉아먹은게 느껴진다. 남들이라면 한 8파인트의 피를 수혈하면 끝이 날 것이었는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으로 피가 들어간다. 그런데 어제 회진끝날때 중환자실 간호사가 ‘AB형 피가 모자라서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혈액은행에서 그랬어요’ 라고 하더라.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할까나.
보호자는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하는데 원무과에서는 수천에서 수억의 진료비를 받아내는게 부담스러운지 계속 살 가망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고, 사체피부부터 Nexobrid(죽은 살만 선택적으로 녹여내는 공포의 파인애플 추출물)의 수급은 계속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어제부터 CRRT(지속적 신대체 요법. 24시간 돌아가는 투석기)를 켰는데 충분한 수분은 제거가 안되고 혈압만 떨어지고… 아무튼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여 있다.

살 수 있을까?

솔직히 나도 모른다. 나역시 매 순간순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게 사실이니까. 어제도 투석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취소가 된 것이고 보통의 경우 한 번, 두 번 수술이 취소 되다가 사망하는게 일반적인데다 투석기를 돌리기 시작해서 살아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손가락만한 혈관을 잡고, 카테터를 삽입하고, 투석지시를 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임없이 솟아나는 회의감을 피할 수 가 없어서 말이다.
매번 수술을 하겠다 했다가 취소할 때마다 사체피부 회사는 배송비 부담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도 미안하고, 600만원 넘는 진료비를 받아내지 못하면 인사고과에 빨간줄이 생기니 미수금에 덜덜 떨고 있는 원무과 직원들에게도 미안하고, 거기다 다음주 월요일에 코드가 잡힌다는 Nexobrid를 오늘 당장 해달라고 졸라야 하는 것도 머리가 아프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로 진행된다면 좋을 것을, 전혀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하나하나 꼬인 실을 풀어나가는 기분이라 정신적인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어제도… 한 세 시간 잤나?

어떻게든 딱 3주만 버티면 가능성이 보일 거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 3주가 문제다.
어떻게 하면 3주를 버티게 하고, 나도 3주를 버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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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길

이번주는 계속 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월요일 수술에 너무 많은 체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내 고민의 40%를 차지하고 있던 환자의 마지막 수술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고, 초기 세 번의 수술이 세균감염으로 망쳐져서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세균 감염만 잘 조절되었으면 벌써 걸어 퇴원했을 환자이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고.

뭐… 다시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환자였다고 생각한다.
당뇨만 달랑 있는 환자가 아니라 각종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과체중 환자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중증화상 환자는 기초대사량의 150~200%정도 열량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 환자는 혈당 조절이 엉망이라 이대로 주면 혈당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제대로 열량 공급을 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과체중이다 보니 식사를 조금만 많이 공급하면 배가 남산만해져 (스트레스 상황에선 장운동이 떨어지는 데다 당뇨에 의한 합병증으로 위장의 내용물 배출이 지연됨. 다시말해 소화가 잘 안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셋째론 당뇨로 인한 만성신부전이 진행중에 있어서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계속 이뇨제를 써야 했고, 특히나 대량의 수액이 들어가는 화상이다 보니 툭하면 전신부종에 폐부종이 와서 호흡곤란이 발생했다. 더해서 목이 짧고 굵고 입이 작으며 과체중이다 보니 첫 수술 들어갔을때 기도삽관이 제대로 안되어서 저승 절반정도 다녀왔다는…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이었다. 수술하고 나면 몸에 물이 차고 목에도 물이 차서 호흡곤란으로 응급 기도삽관 하고 심정지도 발생하고 정말… ㅠㅠ

환자를 치료하는게 내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환자였다. 뭐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환자 보호자는 진료비 많이 나와서 고통 받고, 환자는 아프니까 고통받고 나는 환자가 내 맘만큼 치료가 되지 않아서 고통 받았다. 그래도… 진짜 그래도 무사히 살려서 집에 보낼 수 있을것 같다는 확신이 드니 마음의 짐이 다소 덜어짐을 느끼고 있다.

환자는 나아가지만 조금 후회스러운 것도 몇 있었다.
우선 아무리 과체중이고 당뇨가 심해도 초반에 더 공격적인 영양 공급을 했다면 세균감염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 더 신장내과에 내 의견을 피력해서 투석을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마지막으로… 분명히 3:1 메쉬 플레이트 (이식할 피부에 구멍을 뚫어 늘려주는 장치. 3:1이면 가로로 3배 늘어남)를 사용했는데 6:1이 튀어나온 빌어먹을 회사 놈들을 조져주지 않은 것도 아쉽고. 그 놈들 덕분에 가뜩이나 상태 안좋을때 한 수술이 완전 망해 버렸다. 항의를 해도 고작 메쉬 플레이트 교환이나 해주겠다니… 정말.

아무튼 지금 돌아보면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자료 찾아보며 지냈던 내 삶과, 여러명의 환자를 잃으며 체득한 지식이 이 환자를 살리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시체의 길을 걸으며 얻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잃어가며 성장하는 거니까.

오늘은 3월 20일이다. 적어 놓았던 글이 사라져서 이제는 정확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년전 난 이 날 환자 한명을 잃으며 내 지식의 짧음과 실수에 대해 한탄했고 내 나름의 기념일로 정해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래… 또 힘 내서 망자의 길을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