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놀이

수 일 전에 동료 선생님이 한 이야기였다. “왠지 우리는 의사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만약 여기서 떠나게 되면 제대로 의사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 선생님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겠지만 난 며칠쩨 이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했다.

의사놀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아서다. 나 같은 경우는, 인턴부터 전공의, 그리고 전문의로서 취직까지 전부 지금 병원에서 했고, 다른 곳을 간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바쁘고 힘들게 산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개원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전 내내 외래 보다가 중간에 잠시 시간이 비면 수술을 하고, 오후에도 수술을 하고, 소위 원장이라는 사람이 정해준 규칙에 따라 당직도 서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있는 선생들은 일단 어마어마한 수의 환자를 보는데다가 외래와 수술 사이에 강의도 하고 정치도 하고 논문도 쓴다.
그런데 난… 외래를 보고 나서 수술이 없고 당직이 아니면 내 방에서 쉴 수도 있고, 소위 시간이 있어서 논문을 쓰고 그러고 있으니.
임금..? 물론 내가 조금 덜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무중 자유시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늘고 길게 가는 공무원 같은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개원가의 선생님들은 매주 전체 회의에서 실적발표를 한다거나, 실적이 떨어지면 원장이 개별 면담으로 압박을 주는 일이 허다하다는데 우리는 그런것도 없고 말이다.
말 그대로 ‘알아서 열심히 하면 절대 터치하지 않을께’ 분위기니까 정말 좋은 직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당직은 힘들다. 하기 싫고 요즘은 당직 한번 하고 나면 이틀동안 피곤하고 지치고 그렇다. 아까 일정을 보니 내일이 당직이던데, 그 다음날 외래 볼 때 상당한 피로를 느끼겠지. 뭐 까놓고 말해 월요일 당직 서면 화요일 내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진짜 피곤하거든.

아무튼… 좀 불평불만을 줄이고 얌전히 하라는 대로 일하며 지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보다 팡팡런 할 수 있는 곳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잘 찾아보면 틀림없이 있겠지만, 굳이 지금 상황도 나쁘지 않은데 다른 곳으로 떠날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 자유 시간이 있으니 내 분야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도 쓰레기가 되면 안되니까 말야.

피곤하면 잠을 못 자는구나

이번주의 제일 힘든 날이 지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아무것도 못 먹고 수술에 들어간 것은 폐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제, 아침 8시 30분 부터 저녁 5시까지 수술실에 있었다. 중간에 딱 30분 쉬고 물 한잔 못 먹고 계속 수술만 했다. 달랑 두 케이스였지만 둘 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수술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비실비실 집에 와서는 아내가 강제로 먹이고 있는 샐러드를 먹고 샤워하고 그대로 잤다. 새벽 두시 반 정도 되어 한차례 깨고는 아침까지 잠들었다.

내과의사와 우리가 다른 부분을 잠시 생각해보면, 외과는 평소에는 멍때리며 가만히 있다가 수술을 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점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내과 의사들은 환자의 진단 부분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데이 트래이딩 방식이고, 외과 의사들은 수술할 때 모든 에너지를 쏟는 한 철 장사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정말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느끼는게, 내과의사들은 꼼꼼하고 집요한 반면 외과 의사들은 앞 만 보고 달리는 레밍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의식의 흐름이 극명하게 달라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뭐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못났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모두 의사인데 각각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보면 되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자신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는 XX과 의사 할래!’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조금 한심할 때도 있다. 이건 100% 직업이기 때문에 유행하는 과라고 지원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통받으며 지내는 의사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과를 하든간에 무조건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사실인데 맞지도 않는 옷을 입듯이 억지로 유행하는 과를 선택하는 것은 골병들어 일찍 죽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무슨과 의사를 하든간에 굶어죽지는 않는데 말이다.

아무튼. 흠흠…
어제는 너무 힘들었고,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데 내일 또 수술이다. 어제 수술한 환자의 수술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당분간 계속 수술을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 명절인 것이 가장 큰 문제기는 하고 말이다. 참 이상하지? 유독 난 명절 전후해서 환자가 많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명절을 지내본 적이 거의 없다. 이것도 일종의 천성인가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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