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깼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카구라를 보고 가자

카구라(神楽)는 일본 신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론 신사마다 대동소이하고 이세신궁 카구라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데, 뭐 그렇다고 대단한 차이는 못 느끼겠다.
위 동영상의 경우 아주 잘 한다고는 못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일반적인 카구라를 보여주고 있다.

아… 뭐 카구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난 김에 동영상 찾아서 본 것 뿐이다.

그저께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센터장에 대한 건은 선수를 쳐서 내가 안하기로 했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칭병으로 성공적인 방어를 했지만 같이 갔던 성형외과 선생님 입장에서는 짜증이 많이 났겠지. 나야 내가 안하면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신경쓰지 않을 상황이었고 내 입장에서는 잘 피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방어에 성공하고 나니 내 고민의 절반이 증발하는 쾌감을 느꼈다.
두번째는 밤에 별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쳤다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강원도 철원까지 1.5시간을 달려 백마고지 전적지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래도 나와 같은 의도로 온 것 같은 차가 한대 서 있었고, 약간의 짐을 차 앞쪽 빈 공간에 내려놓은 것을 보았다. ‘우와 오늘은 정말 보기 드물게 다른 분하고 같이 별사진을 찍겠구나’ 하면서 차를 세웠는데 웬걸. 하늘에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일기예보나 위성사진에서 밤에는 맑을 거라는 예보가 있어 일단 삼각대와 마운트만 설치해 놓고 세 시간을 기다렸다. 날씨는 기다려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슬슬 허리가 시큰거렸다. 몸살이었을까?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밤 10시가 되어 짐을 챙기고 출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쉬웠던 점은 출발하고 나니 하늘이 맑아져 많은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밤 10시에 별이 보여도 새벽까지 촬영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대로 집을 향했다. 또다시 1.5시간 동안 운전을 했고, 오늘은 Jeep을 모는 음주운전이 강하게 의심되는 인간을 만나 조심해서 추월하고 집에 도착했다.

1년은 365일이고 한국에서 밤하늘이 맑은 청명일은 10~20일이 전부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한 1년은 54주이며, 주말에만 나갈 수 있으니 많아야 54번 출사를 나갈 수 있다. 이 두가지가 완벽하 맞아 떨어질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렇게 따지만 난 별을 보러 가고 싶어도 쉽사리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겠는가. 날씨에 영향을 받는 취미라는 것이 원래 이런것을. 다만 장비는 시간이 가면 낡아가는데 그만한 가치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아무튼 다시 좀 자야겠다.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건강에 좋아보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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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심하다

일단 어제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전문 간호사 한 명이 더 와줘서 훨씬 수월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2일전 수술할 때는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꾸욱 잘 참고 침착하게 끝냈다. 뭐… 앞으로 어찌될 지는 환자에게 달려 있는 거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받는 문제는 환자와 관련된 것들이 아니라 병원 행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선 어제 수술한 환자의 2회 수술료 중에 ‘재료비’만 3,000만원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오예! 돈 벌었다!”가 아니라 병원이 먹는 돈도 아니고 내가 먹는 돈도 아니고 순수하게 재료상에게 재료를 받아 가격 그대로 환자에게 제공하는 재료비가 3,000만원 나왔다는 것이다. 이건… 불행하게도 정부에서 전혀 부담을 해주지 않는 부분이고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아침에 이 이야기를 원무과 입원담당 직원에게 알려주니 입을 앙 다물었다.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좀 알려달라는 아쉬운 소리에 미안하다고 굽신굽신 한 후 자리를 옮겼다.
분명히 난 방금 ‘재료비’만 3,000만원이라고 했다. 그래. 지금까지 입원해서 들어간 전체 금액이 이미 5,000만원에 달하고 있다는 소리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맞벌이 부부의 남편인 이 사람이 과연 이 돈을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뭐 정부에서 ‘재난적 의료비’라는 것을 2,000만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재난에 가까운 돈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이게 과태료 같은 것이었다면 시청 앞에서 드러누워 버릴만한 돈이다.

사실 오늘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 환자의 의료비 문제로 사회사업실부터 원무과까지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동일한 화상범위의 고령 환자가 나타나 내 명절이 엉망이 된 것도 아니었다.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센터장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원장 만날 생각에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하고 짜증이 났다. 만나서 뭐라고 이야기 할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이렇게 말할때는 뭐라고 대답할까 등등의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진짜 어제는 이 문제로 자다가 꿈까지 꿨고 밤새 네 번이나 일어나 이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시키려는 이유를 모르겠고, 불편하디 불편한 자리까지 불러내 먹구멍에 넘어가지도 않을 식사를 하며 계속 부정어를 뿜어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 난 단 한푼도 대장질 할 생각이 없고, 이런 무의미한 주제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설치고 싶지도 않다. 말 그대로 권력과 담을 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며 주는 봉급 받으며 살고 싶은데 진짜 사람 가만 두지를 않는다.

진짜… 내일 점심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고 더 이상 이딴 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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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은 힘들어

화상센터장을 제안받았다

사실 지난주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 우리 병원이 마지막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거기 화상센터장으로서 참가해서 리모델링 사업을 끝마치고 화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리모델링도 끝내고 다시 화상을 보는 병원으로서 대외적으로 기지개를 켜자는 뜻인 것 같았다.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었고, 어제 하기 싫다는 내용의 편지를 제안한 사람에게 보냈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을 상대하고 설득하고 지시하는 것이 싫을 따름이었고, 그런 과정중에 내가 받을 스트레스가 무서운 것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직함을 받아봐야 제대로된 추가임금을 받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 신경쓸 일만 늘어나고 고생만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좀 더 일찍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환자가 빠져나가는 이 상황을 미리 확인해서 대책도 세워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병원은 그러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아마도 우리병원의 유니크한 특징을 찾다가 도저히 찾을 것이 없으니 다시 화상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 여느병원과 별다른 차별점도 없는 종합병원에서 어떻게든지 차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지만, 이미 환자는 다 떠난 상태이고 아무도 우리 병원이 화상을 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를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거쳐간 두 세명의 원장중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4년 동안이나 화상센터를 짓겠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전혀 만들어진 것이 없을까. 말 그대로 말만 해놓고 손도 대지 않은 것이겠지. 화상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갑갑하고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화상센터장이 되는 것이 찝찝한 부분은, 내가 사람을 다루고 사람과 협상을 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뛰어난 대장의 밑에서 일할때는 최고의 직원으로서 업무에 충실할 수 있지만 대장이 되어 버리면 그런 장점은 싹 다 사라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각기 자신에게 맞는 그릇과 옷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걸까. 단지 그걸 말씀드렸을 따름이다.
IT에서 일하는 친한 형은 ‘그래도 결국에는 네가 하게 될 거야’라고 했다. 우리 병원에서 유일하게 외과의사로서 화상을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뭐…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거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지 피해보고 싶으니 노력은 하고 있다 생각한다. 가능하면 같은 봉급에서 일은 적게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이고, 스트레스는 최소화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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