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것

역시 남 신경 써줘봐야 좋을게 하나도 없다

지난번에 우리병원 행정직들을 위해 사내게시판에 글을 하나 썼다가 다음날 아침에 지웠다.
뭐 지운 이유는 전체 내용중에 찝찝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어떤 정치인이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이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저도 요즘 저녁이 있는 삶을 조금 누리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밥도 해주고 딸아이 공부도 가르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분들 중 일부는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 전공의때 만큼은 안되더라도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토요일에도 나와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제대로 수당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하고요.

내용중 일부인데, 요즘 우리과가 당직을 안 서면서 내가 누리게 된 좋은 점과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혼자 생각이었지만 분명히 삐뚤어지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내용은 보지 않고 이 부분만 쳐다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6시간만에 지운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어제 기획실 팀장을 우연히 만났는데 바로 이 말을 하더라.

“외과 이제 당직 서게 되면 집에 잘 못가실텐데 어떡해요? ㅋ”

시발. 역시나 이것만 볼 줄 알았다. 순간 짜증이 확 올랐지만 길게 얘기해봐야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언제 다시 서게 될 지도 모르는데요 뭐” 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전에 내 친한 형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느낄때 노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집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툭하면 돈도 못 받는 야근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렸지만 이 문제는 결국 자신들이 해결할 문제라는 생각. 좋은 뜻으로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봤지만 정작 본인들이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지원사격조차 허공에 총쏘기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 해서 돈을 받으면, 그게 무슨 일이든 간에 당신은 노동자’라고. 그렇게 본다면 목수도 노동자고 공장근로자도 노동자고 우리도 노동자인 것이다. 결국 노동자라는 말은 일부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모든 이들을 뜻하는 말인데, 유독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노동자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 병원 행정직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자신들은 정규직이니까 나중에 병원의 행정부분 ‘관리’를 할 사람들이고 이렇게 봉급도 못 받고 열심히 일해도 야근수당 요구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거… 윗 사람들이 아랫사람들 등쳐먹으려고 하는 개소리인거 왜 모를까?
나 역시 그렇게 10년을 보내봤다. 인턴, 전공의 5년동안 아무 불평불만 하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해봤고, 최장 주 126시간까지 근무해본 적도 있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1주일 3일의 당직과 주간근무 40시간을 꾹꾹 눌러 채우며 일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얻은 것은 불면증과 우울증. 지금 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은 아픈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그만큼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걸 꼭 과도한 노동과 무임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건… 윗 사람이 아랫사람 벗겨 먹는 일일 뿐이다.

아무튼 ‘역시 저것들은 지들이 사장인 줄 알아’ 라는 생각과 ‘남 신경 써줘야 하나도 얻을 것 없다’는 생각만 마음에 남았다.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좀 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도 정작 글을 올리니 바로 입장바꿔 비아냥 거리는 것을 보자니 아직 더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여성 근로자가 50% 이상 되는 병원에서 남들 다 있는 어린이집 하나 없는 것도 이해가 되었고, 다른 병원보다 20~30% 임금이 적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본인들이 문제가 있다고 깨달고 그걸 바꾸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미친 경영자가 알아서 챙겨줄까. 매년 임금 협상때 노동가요나 크게 틀어놓는 일 밖에 못하는 것들이 제대로 된 임금협상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노동운동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완전 우익인 내가 봐도 저들은 벗겨먹기 쉬운 존재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말이다.
항상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왜 진상이 성공하고 잘나가는지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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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사망과 이런 저런 일들

며칠 되지 않았다

2월 28일에 환자 수술을 했고, 3월 1일 저녁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다가 3월 2일 사망하셨다.
수술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출혈도 별로 생기지 않아 성공적인 수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까지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 8시 즈음부터 혈압이 급격히 감소하고 동맥혈 산소분압이 주우욱 떨어지더니 새벽 2시가 되어 심정지가 발생했다. 심폐소생술을 30분이나 했지만 회복되지 않았고, 환자분은 새벽 2시 47분에 사망하셨다.

환자 상태가 나빠진 시점에, 이런저런 많은 고민을 하며 전산에 올라오는 수치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정상인 검사결과. 그리고 환자의 죽음. 뭐 하나 맞아 들어가는 조각이 없어서 주말 내내 찝찝한 마음을 안고 지내다 이번주 들어오며 환자 차트와 자료를 리뷰하며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원인을 만들어 보기는 했지만 어느것 하나 명확한 결론은 찾지 못했다. 그저 보호자분들께 설명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심장 문제로 생각된다’ 정도. 어제 내내 시간 있을때마다 돌아다니며 다른 전문의들을 만났다.

환자가 살아나는 것도 왜 살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왜 사망했는지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그걸 인지하고 다음번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과는 대부분의 경우 사망이 드문 과인지라 다른 분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분야는 화상이고, 중증화상은 워낙 쉽게 사망하기 때문에 항상 환자 사망이 발생하면 그 결과를 혼자 정리해봤다. 이번에도 나름대로의 Mortality Report를 만들어 봤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끝날 허무한 자료가 되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가 얻은 ‘앞으로 잘하자’ 결론은 “집중치료실에 있는 중증화상환자의 차트를 따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어떨까” 였다.
물론 이걸 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환자 상태를 좀 더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의무기록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했던 행위를 기록하는 것도 있지만 리뷰를 통해서 환자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환자의 보호자분이 보험회사에 제출할 서류때문에 외래에 오셨다.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안한 것도 사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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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글과 삶

전에 누가 그러길, 만성피로를 겪고 있으면 식후에 바로 식곤증이 온다고 하던데

요즘 내가 그렇다. 어제 저녁부터 샐러드만 먹기로 했는데, 먹고 나서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슬슬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말도 느려지고 자꾸 눕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고 일본인 친구에게 전달할 녹음 파일을 만들고 워드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좀 했고.
샤워하고 나서 잠시 컴퓨터를 켰는데 한 시간인가? 잠시 게임 하다 잠이 들었다. 어제는 거의 8시간이나 잤는데 아침에 영 일어나기 힘들어 끙끙 앓다 집을 나섰다.
하루하루 삶을 사는 건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영화처럼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을 위협하는 일이 갑자기 생기지도 않는다. 그냥 먹고 자고 싸며 하루를 보내는게 평범한 삶인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무난한 하루를 사는 것. 이걸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하나 보다.

개인적으론 좀 더 쉬고 싶고, 좀 더 많은 자유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자면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한다. 웃긴 고리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해선 자유시간을 줄여야 하니 말이다. 어찌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는, 사내게시판에 글을 썼다. 최근 병원 행정팀의 야근이 많이 늘었는데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에 대해 좀 신경을 써달라는 글이었다. 사실 쓰게 된 계기는 격주로 하고 있는 전체 전문의 회의였다. 회의에서 원장님이 자꾸 ‘우리병원 행정직들이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야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길래 ‘미쳤나… 일을 했는데 왜 돈을 안줘’하는 마음으로 행정직 이사람 저사람 물어보다 글을 쓰게 되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을 했으면 돈을 제대로 쳐주라고 쓴 글이기도 했다.
사실 심하게 말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직장은 직장이 문제가 있는 것이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직장이라면 망하는게 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세상 이치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랫사람 쥐어짜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일까? 어제 퇴근하고 오늘 아침까지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너무 나댄 것인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한 것일까?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해 글을 지울까 말까 생각하다가 방금 들어가 보니 50명이 읽은 것을 발견했다. 이거… 이제 충분히 읽은 것 같으니 지울까 싶다.
예전부터 하는 생각이지만 오래 살려면 움츠려야 하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해야 무난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뭐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어머니의 끝임없는 잔소리도 있지만 사회생활에서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몸소 체험해서 그런것 아닐까 싶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어제의 내 행동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 분명하니 말이다.

심하게 말해서… 병원내 다른 직종이 임금을 얼마 받던, 일이 얼마나 고되건 내 알 바는 아니다. 나야 하찮은 계약직이고 이 병원이 망하지 않는 한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열심히 돈이나 받는게 가장 좋은 일이니, 거머리는 들키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겠지.
그런데도… 어제는 글을 써버렸다.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닐까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에휴… 망할 한노총 새끼들. 평소에 일을 잘 했으면 내가 글을 쓸 일도 없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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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응급실 콜을 받았다

너무 피곤하다. 아침 출근하며 울고 싶었다

아침에 출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써클을 봤다. 분명히 어제 쉬기는 했지만 그냥 온 몸이 힘들고 지친다. 1월달부터 중환자들 때문에 계속 강행군을 하는 느낌이다. 집에서도 매일 컴퓨터로 환자 상태를 보고 있자니 집에 와서도 집에 오지 않은 기분이다. 온 몸이 축축 처지고 그저 드러눕고만 싶은 마음. 이걸 보고 지쳤다고 표현하는게 맞겠지.

총 세 명의 중환자 중에 한 명은 일반병동으로 갔고, 한 명은 상태가 나아졌고, 다른 한 명은 사망하셨다. 지금 신경쓰는 것은 일반병동으로 간 환자와 상태가 나아진 환자인데, 상태가 나아진 환자는 최근에 양쪽 다리의 피부이식을 했지만 세균감염으로 이식실패가 일어나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씁쓸하기도 하고 답답한 기분이다. 뭐 1/3이라도 붙었으면 좋았을텐데 어제 상태를 보니 거의 다 녹아버렸다. 환자분께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일반병동으로 간 환자도 녹록치가 않은 것이, 어제 봉합한 부분이 안정되면 다음주에 팔을 배에다 심어서 근육과 인대를 덮어야 한다. 양쪽 팔을 다 다쳤으니 오른쪽에 3주, 그리고 왼쪽에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다 낫는데까지 대략 8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사이에 난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게 되겠지. 뭐 지금 있는 환자들 다 정리되려면 6개월은 걸린다는 말이 되겠다.
환자들의 돈도 돈이지만 내 멘탈도 탈탈 털려나갈걸 생각하니 왠지 온 몸이 아프네.

그래도 뭐… 다 잘 나아서 집에 갈 수 있도록 신경써봐야지. 내가 지치면 환자가 죽더라.

오늘도 ‘넌 슈퍼맨이 아니야’ 라는 말을 떠올리며 힘이나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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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돌아오는 월요일

지난 주말은 뭐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계속 잠자고 술만 마신 것 같다. 뭐 이렇게 말하면 알코올 중독 같아 보이겠지만, 토요일에 술 먹고 잠들었다는 말이다. ㅋ
금요일에 퇴근하려는데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퇴근했고, 그렇게 집에 와서 잠시 이런저런 것들 정리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에 맥주를 마시고 잠에 들었는데 그 사이에 환자분이 사망하셨다. 이 소식을 일요일 오전에 알게 되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그래도 버티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나이는 화상에서 최상위 위험인자인지 나이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신 것 같았다.
백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연한 것이지만 사망 후 발생할 보호자분들의 항의나 민원등에 대한 생각도 했고, 의학적으로는 어째서 사망했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지금 환자 상태를 되새겨봐도 딱히 답이 안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폐색전증을 앓았던 분이라고 하더라도 혈액검사상 급격한 혈압감소와 함께 동맥혈산소분석상의 산소감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기각인 것이고, 심근효소 수치가 사망직전까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근경색도 기각인 것이고, 탈수라고 말하기에는 사망전 2일간 충분한, 어쩌면 다소 많은 수액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각이다. 마지막으로 패혈증에 의한 사망이라고 하기에는 항생제 변경이 있었으며, 전방위 항생제를 사망 48시간 전부터 투여했으니 그것도 아니겠지. 결국 남는 것은 급성 심부전에 의한 사망 정도만 남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동맥혈 산소분석 상에 산증이 보이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다.

왜 사망하셨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딱히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중증화상 보는 의사라고는 이 병원에 딱 하나, 나 혼자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저 혼자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하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복기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내 친구들은 나보고 ‘넌 슈퍼맨이 아니니까 무리하지 마라’고 다독여 줬고 나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이제는 너무 힘들다.

1월달 안에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망할 병원은 아직도 당직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후 5시 30분 이후에 병원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경우에 대한 추가임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전문간호사들도 야간에 남아있는게 돈이 안되는 상황에서, 환자를 생각한다며 아무 임금도 받지 못하며 병원에 남아있는 것도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평범하게 봉급받는 의사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병원이 환자를 담보삼아 위협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게 좋은 일일까..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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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깼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카구라를 보고 가자

카구라(神楽)는 일본 신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론 신사마다 대동소이하고 이세신궁 카구라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데, 뭐 그렇다고 대단한 차이는 못 느끼겠다.
위 동영상의 경우 아주 잘 한다고는 못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일반적인 카구라를 보여주고 있다.

아… 뭐 카구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난 김에 동영상 찾아서 본 것 뿐이다.

그저께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센터장에 대한 건은 선수를 쳐서 내가 안하기로 했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칭병으로 성공적인 방어를 했지만 같이 갔던 성형외과 선생님 입장에서는 짜증이 많이 났겠지. 나야 내가 안하면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신경쓰지 않을 상황이었고 내 입장에서는 잘 피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방어에 성공하고 나니 내 고민의 절반이 증발하는 쾌감을 느꼈다.
두번째는 밤에 별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쳤다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강원도 철원까지 1.5시간을 달려 백마고지 전적지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래도 나와 같은 의도로 온 것 같은 차가 한대 서 있었고, 약간의 짐을 차 앞쪽 빈 공간에 내려놓은 것을 보았다. ‘우와 오늘은 정말 보기 드물게 다른 분하고 같이 별사진을 찍겠구나’ 하면서 차를 세웠는데 웬걸. 하늘에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일기예보나 위성사진에서 밤에는 맑을 거라는 예보가 있어 일단 삼각대와 마운트만 설치해 놓고 세 시간을 기다렸다. 날씨는 기다려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슬슬 허리가 시큰거렸다. 몸살이었을까?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밤 10시가 되어 짐을 챙기고 출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쉬웠던 점은 출발하고 나니 하늘이 맑아져 많은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밤 10시에 별이 보여도 새벽까지 촬영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대로 집을 향했다. 또다시 1.5시간 동안 운전을 했고, 오늘은 Jeep을 모는 음주운전이 강하게 의심되는 인간을 만나 조심해서 추월하고 집에 도착했다.

1년은 365일이고 한국에서 밤하늘이 맑은 청명일은 10~20일이 전부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한 1년은 54주이며, 주말에만 나갈 수 있으니 많아야 54번 출사를 나갈 수 있다. 이 두가지가 완벽하 맞아 떨어질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렇게 따지만 난 별을 보러 가고 싶어도 쉽사리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겠는가. 날씨에 영향을 받는 취미라는 것이 원래 이런것을. 다만 장비는 시간이 가면 낡아가는데 그만한 가치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아무튼 다시 좀 자야겠다.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건강에 좋아보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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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심하다

일단 어제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전문 간호사 한 명이 더 와줘서 훨씬 수월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2일전 수술할 때는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꾸욱 잘 참고 침착하게 끝냈다. 뭐… 앞으로 어찌될 지는 환자에게 달려 있는 거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받는 문제는 환자와 관련된 것들이 아니라 병원 행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선 어제 수술한 환자의 2회 수술료 중에 ‘재료비’만 3,000만원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오예! 돈 벌었다!”가 아니라 병원이 먹는 돈도 아니고 내가 먹는 돈도 아니고 순수하게 재료상에게 재료를 받아 가격 그대로 환자에게 제공하는 재료비가 3,000만원 나왔다는 것이다. 이건… 불행하게도 정부에서 전혀 부담을 해주지 않는 부분이고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아침에 이 이야기를 원무과 입원담당 직원에게 알려주니 입을 앙 다물었다.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좀 알려달라는 아쉬운 소리에 미안하다고 굽신굽신 한 후 자리를 옮겼다.
분명히 난 방금 ‘재료비’만 3,000만원이라고 했다. 그래. 지금까지 입원해서 들어간 전체 금액이 이미 5,000만원에 달하고 있다는 소리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맞벌이 부부의 남편인 이 사람이 과연 이 돈을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뭐 정부에서 ‘재난적 의료비’라는 것을 2,000만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재난에 가까운 돈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이게 과태료 같은 것이었다면 시청 앞에서 드러누워 버릴만한 돈이다.

사실 오늘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 환자의 의료비 문제로 사회사업실부터 원무과까지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동일한 화상범위의 고령 환자가 나타나 내 명절이 엉망이 된 것도 아니었다.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센터장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원장 만날 생각에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하고 짜증이 났다. 만나서 뭐라고 이야기 할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이렇게 말할때는 뭐라고 대답할까 등등의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진짜 어제는 이 문제로 자다가 꿈까지 꿨고 밤새 네 번이나 일어나 이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시키려는 이유를 모르겠고, 불편하디 불편한 자리까지 불러내 먹구멍에 넘어가지도 않을 식사를 하며 계속 부정어를 뿜어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 난 단 한푼도 대장질 할 생각이 없고, 이런 무의미한 주제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설치고 싶지도 않다. 말 그대로 권력과 담을 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며 주는 봉급 받으며 살고 싶은데 진짜 사람 가만 두지를 않는다.

진짜… 내일 점심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고 더 이상 이딴 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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