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조용한 금요일이 되길

오늘은 당직날이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병원에 묶여 있어야 한다. 금요일 당직은 다른 요일의 당직과 조금 다른데, 일단 오후 외래를 당직자가 봐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날보다 당직 시간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요일의 당직의 경우에는 9시 전에 모든 일이 끝나 편안하게 집에 갈 수 있는데 금요일은 아침 회의 자체도 늦게 시작하기 때문에 몇 십분 더 있다 가게 된다. 사실 수십분에 불과한 시간이라 그다지 큰 차이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빨리 집에가고 싶기 때문에 더 길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당직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항상 빈다. 야간에 수술하는 것이 엄청나게 싫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일을 만들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거기다 야간에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1. 환자 보고 2. 마취과에 연락해서 시간 잡고 3. 집에서 쉬고 있는 전문 간호사를 불러서 수술해야 하는 귀찮은 일들이 생긴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불러낸다는 것에 심적인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야간에 나오는 사람은 그에 따른 추가 임금을 받지만 그래도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뭐 결국엔 내가 일하기 싫어서 그런거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쨌든 당직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매일 빌고 있다.

요즘…
돈 때문에 정신이 없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마련해야 해서 매일 은행에 예금한 펀드를 깨고 정기예금을 깨고 송금을 하고 그러고 있다. 방금은 주식계좌에서 뺄 수 있는 돈도 최대한 빼서 통장으로 이체를 시켰다.
어제는… 진짜 한 시간 정도 하염없이 가계부 화면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어디 돈이 더 나올 구멍은 없나 한참 생각했던 것 같다.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런 삶은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난 어느정도 예금을 가지고 여행도 다니며 편안하게 살고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하우스 푸어가 되어버린 기분이라 참담하기 그지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슬픈데 어쩌겠는가.
앞으로 10년은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아서 한숨부터 나왔다. 뭐 아파트 잔금까지 다 치루고 나면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해지겠지만, 그래도 계속 갚아 나가야 하는 빚이 생긴다는 점은 슬프기 그지 없다.

에휴. 돈 걱정이 생기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네. 요즘은 책도 못 읽고 진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 걱정만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만 써야지.

당직

모처럼 당직을 섰다

4월 말에 합의된 대로 당직을 섰다. 종전의 당직을 설 때보다 심각하게 힘들었다.
무슨 말이냐면은, 전에 당직을 설 때도 몇 개월에 한 번 있을법한 바쁜 날이 첫 당직에 들이 닥쳤다는 것이다.
질병이 휴일을 타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휴일 따위는 무시하고 아픈게 정석인데, 여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휴일이든지 휴일 마지막 날은 응급실이 붐빈다는 것이다. 열 나는 사람, 머리 아픈 사람, 배 아픈 사람.. 특히나 휴일동안 무얼 그렇게 먹었는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배 아프다고 밀려 들어온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나 보다.

아침부터 대장의 염증(게실염이라는 병이 있다)으로 두 명을 입원시켰는데, 하나는 보통의 대장 염증이 아니라 살짝 빵꾸가 나서 국소 복막염이 되어버린 환자였고, 다른 하나는 보통의 게실염이었는데 입원하고 나서 갑자기 피가 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여차하면 수술 할 생각도 하고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드렸는데, 환자 보호자들이 전문분야가 대장/항문쪽인 전문의 선생님에게 치료 받고 싶다고 해서 몇 시간에 걸쳐 주위 대학병원에 전원문의를 했다. 거의 두 시간은 소비한 것 같다. 나도 이쪽 일을 하지만, 요즘 야간에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정말 없어서 전원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환자 보호자분과 상의해서 사설 앰블런스로 응급실에 그냥 들이닥쳐 버리는 방법으로 해결을 했다.
당장 이 환자 하나만으로도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아주 심한 화상 환자도 한 명 내원 해서 한시간 반에 걸쳐 혼자 드레싱(상처 소독)을 했고, 또 입원은 시켜놓고 환자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앞 뒤 안 가리고 무조건 화내는 노인 보호자분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정신 다 차리고 보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매 당직마다 이런 식이면 살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모처럼의 당직이었는데 첫 날부터 힘든 날 수준의 일이 쏟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 바로 퇴근하냐면 그것도 아닌지라… 첫 날부터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오전에 외래 봐야 하고, 오후에는 어제 입원한 화상 환자 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 끝나면 별 사진 찍으러 가려고 한다. 피곤할 텐데 사진까지 찍으러 가냐고 묻는다면, 이거라도 안 하면 삶이 너무 삭막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잠시라도 세상사를 잊고 하늘만 바라봐야지, 직장-집-직장-집만 하다보면 사람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그렇다.

하아.. 그나저나 대장/항문 외과 전문의가 없는 상황에서 야간 당직을 시작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싶다. 결국 한밤중에 문제 생겨서 오는 환자 대부분이 대장 쪽의 문제인데, 그 쪽이 커버가 안되는 상황에서 당직을 서봐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 이것 참…. 올 사람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쯧.. 그만 생각하고 일 한 다음에 별 사진이나 찍으러 가자. ㅠ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약 약 약

요즘 알러지성 비염으로 고생이다

나이 40이 되어서 뜬금없이 시작된 비염으로 고생이 많다. 요즘은 툭하면 코가 막히고 콧물이 줄줄 나온다. 특히 그저께 따뜻하게 잠을 자지 못한 이후로 제채기까지 심해져서 완전히 비염 환자가 되었다. 스스로에게도 웃기지만 추운 곳에 나가게 되면 비염이 더 심해지니 별을 보러 갈 때는 고생이 심할 것 같다.
아무튼 요즘 비염약 때문에 항상 멍한 상태이다. 아침에도 식사 후에 비염약을 하나 먹었는데 운전을 끝낼 즈음부터 슬슬 멍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온 몸이 나른한 것이 마치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오늘도 해야할 일이 잔뜩 있는데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제는 집에 있다가 마취과 정과장님에게 문자를 받았는데 우리과가 1월달부터 다시 당직을 서기로 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으응? 병원에서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루머로 만들어 뿌리기 시작한 걸까?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은 신호라고 느껴져 밴드에 올렸는데 주임과장님의 댓글이 가관이었다.

“12월내 당직에 대한 수당관련 병원측 입장이 정해지면 설수도 있겠죠. 1월 외과 당직해결하기를 원했으나 타서나 노조와 해결 안되는 일이 많던지..조율이 되어야겠죠.”

무슨 말이지? 기본적으로 당직을 서겠다는 뜻인가? 근데 당신은 당직 안 서잖아. 갑자기 최근 읽었던 책의 글귀가 생각났다. ‘사람은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 수록 윤리적이 된다’.
난 당직설 생각이 없는데? 지금 임금에서 추가로 더 주게 된다면 그것도 감사히 받으며 전혀 설 생각이 없는걸. 임금을 확실히 더 챙겨주는게 아니라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당직을 서는 것이 이득이 된다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 임금인상분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당직 설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당직은 서지 않고 노조 만들어서 임금이나 더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은데 말야.
더군다나 1월에 임금 결정나고 그 임금으로 일하게 되면 2020년에 임금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가능한한 일을 덜 해서 수익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게 2020년에 더 안정적인 임금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외과의사가 당직을 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당신이 서시던지. 뭐 화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뒤편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특히나 우리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시작된 이 계약직 전환 문제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의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 많아 더욱 그렇다.

합리적인 의심.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 아침이네.
아무튼 난 이런 문제와 조금 떨어져서 논문에 대한 리뷰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가능하면 이번주 안에 모든 답변을 준비하고 그에대한 내용을 영어로 부탁해서 해결을 해야 한다. 이것만 해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라 앞으로 당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할 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 생각은 다소 명료한 것 같다. 일단 사직서를 먼저 쓰기 때문에 뜬금없이 당직 이야기가 나오고 무조건 서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냥 그만 두겠다고 할 생각이다. 앞으로 어찌될 지 잘은 모르겠지만, 잠시 쉬었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그동안 당직 서면서 발생한 수많은 개인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조용히 쉬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물론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지금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일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을 돌아봤을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