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것과 동물을 키우는 것

내가 냉정한 동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성인이 되면 그 이후의 삶은 내가 관여할 바도, 관여를 해서도 안되는 거지만 미성년자일때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본다. 아이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먹고 입고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게 부모이고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것으로 규정된 것들을 못하게 하거나 옳은 방법으로 규정된 것을 하도록 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사회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부. 과거의 세계는 사람이 성인으로 거듭나 경제활동을 할 때까지 그다지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거주지역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만 충분히 숙지시키면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아주 기본적인것도 한참을 공부해야 할 만큼 공부할 것이 많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담아두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도 늘었다. 그만큼 공부는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는데 문제는 이놈의 공부가 정말 재미없고 하기 싫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감정적 관계라 아이의 감정이 사방팔방에서 분출된다. 특히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날 워낙 무서워 하기 때문에 – 집에서 잔소리하고 혼내는 것이 나밖에 없다 – 그리고 아이 엄마와 나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아이 엄마에게 교육을 맡기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아이를 보니 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나눗셈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구구단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결국 며칠전부터 구구단을 매일 시험보고 있다.

아마 우리 아이도 나이가 들고 날 생각할 때면 ‘무섭고, 혼내고, 공부 지독하게 시키던 아버지’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공부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라 ‘공부는 절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도 부모로서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 자체에 혐오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원래 공부라는 것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인데 그걸 재미없으니 안해도 된다거나 피해갈 수 있는 것이라 느끼게 하면 바보 되는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특히나 싫어하는 과목에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벽. 그 벽을 깨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점도 말이다.
어제 아이는 구구단 외우는 게 싫어서 저녁 9시에 처가집에 갔다가 밤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아이 취침시간이 11시 전이었으니, 제 딴에는 ‘오자마자 잠을 자야 하니 구구단 안외워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겠지. 미안, 아이야. 아빠는 그렇게 느슨한 사람이 아니란다. ㅠㅠ
결국 또 펑펑울고 구구단 다 외우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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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나고 있고 난 하늘을 본다

장장 5일간의 휴일이 끝나고 있다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거의 1년동안 소식이 끊겼던 미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가 다시 메일을 줬고, 정말 감사하게도 다시 공부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난 명절동안 ‘너의 이름은’ 영화를 봤고 돈도 못 받으면서 병원에 한차례 출근했으며 오늘이 되었다.

트위터 친구가 얼마전에 그런 말을 했다

명절보다 쓸모 없는 휴일도 없을 것 같다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지만 명절보다 무의미한 휴일도 없을 것이다. 보통의 휴일이라고 한다면 가고 싶은 곳을 간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데 명절은 그럴 수가 없다. 휴일중 상당 부분을 할애에 고향이나 부모, 그리고 친지를 만나러 가야 하고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식사를 해야하고 이야기 나누기 싫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듣다보면 화가 나는 수많은 고나리질을 받아줘야 하는 이상한 휴일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휴일”
난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래도 난 마음고생이 심하진 않았지만 토, 일요일 내내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병원 전화를 받고 처방을 넣다가 월요일에는 잠시 병원에 나갔고, 그날 저녁 처가집 식구들과 식사를 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부모님 집에 가서 하루를 보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오늘에 다다랐다. ‘5일이나 되는 휴일동안 무얼 했니?’라고 묻는다면 한숨만 나오는게 사실이다. 무의미하게 흐르는 시간. 그리고 무의미한 행동들에 가득 싸여 명절이라는 이름의 이상한 휴식을 취했다.

Mars_Hubble

문득, 다시 화성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속 13km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몸을 실어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우주를 항해해 화성에 가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종종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이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 간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죽음의 위험에 봉착하게 될 것이고 삶이 더욱 빡빡해지는 것을 느끼고 겪으며, 살기 위한 투쟁을 하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사고나 식량부족, 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게 될 거다. 우스운 일이다. 가면 죽을게 뻔해 보이는데도 붉고 차가운 화성에 가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있다니.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갈망을 ‘화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겠지? 여느때보다도 삶이 풍족하고 어려운 일이 없는 지금인데도 난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찾으며 붉게 반짝이는 작은 행성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언제가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못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에 반짝이는 그 별을 보며 항상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매일 그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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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아마추어 무선

오늘도 VHF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마추어 무선(HAM)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일반인들이 취미 목적으로 무전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을 하는 것인데, 원래 이런 교신이 전세계 무선통신의 시초였다고 한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무선통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연구자들과 아마추어들이었으니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게 발달해서 현재의 CDMA나 LTE가 된 것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무전기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안테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하는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자유민주국가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무선을 허용해주고 있고, 이들을 위한 공용 주파수도 제공을 해주고 있다(주파수는 국가의 재산이다). 원래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무전기와 안테나를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 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맑고 깨끗한 음질로 먼 지역까지 교신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는데, 한국에서는 ‘무전기와 안테나등 제반 설비에 대한 임의 변경’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그냥 무전기로 교신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래도 북한과의 문제가 있어서 다른나라보다도 훨씬 엄격한 제한이 걸린 거겟지.

음.. 난, 그냥 시작했다. 이거 하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거다. 난 아마추어 무선 3급 전화급 자격증을 수년전에 땄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시도해보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90년대 말부터 아마추어 무선은 급격한 세퇴기를 맡고 있으며, 현재는 고령의 무선통신사를 제외하고는 내 나이대의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는 나 같이 괜한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무전기가 아까워서 계속 교신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스포츠 목적으로 좀 더 출력이 높은 무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뭐… 스마트폰에 비교해서 아무 장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나마 장점이 한가지 있다면 지난번 KT기지국 화재처럼 통신망이 끊겨버린 상황에서도 무전기를 통해 자유로운 교신이 가능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재난상황에서 고출력의 무전기를 이용해 더 먼 지역에 재난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의 장점만 남아있다고 하겠다. 근데 그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없으니. ㅋ

생각보다 깨끗한 음질로 교신이 가능한 아마추어 무선은 다음의 제약이 있다

  •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시설에서는 옥상이나 베란다에 거대한 안테나를 설치할 수 없어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에 심한 제약이 따른다
  • 통신법에 따라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다른 사람의 소식을 대신 전해줄 수 없으며, 교신중에 암호문과 같이 교신하는 사람들만 아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고 반드시 평문으로 교신을 해야하며,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고, 특정 물건이나 사업체에 대한 칭찬이나 광고성이 담긴 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음담패설, 욕, 비방을 할 수 없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현재의 휴대전화는 통화내용이 기계에 의해 암호화가 되어 전달되는 방식이라 정확한 키(전화기의 고유 아이디)를 알지 못하면 통화내용을 남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 무선은 북한과의 대치문제로 암호화된 교신을 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평문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다. 거기다 이런저런 교신내용에 대한 제약조건이 있어서 일상적인 이야기라든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결국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이야기라든가 날씨 이야기, 무전기 장비 이야기 정도 말고는 할 말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 일단 설치해 놓으면 전기비 말고는 아무것도 드는 돈이 없는 공짜 통신인데 이런 제약으로 인해 할 수 있는게 극히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만약 누가 나에게 ‘아마추어 무선사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근 후회하지!’라고 말 할 것 같다. 베란다에 남들 눈치보면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고, 비싼 무전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니까 말이다. 나도 뭐.. 일단 구입한 물건이니 아깝기도 하고 근처에 나와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저씨가 있으니 하는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버려두고 근처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선배 무선사들은 해외의 무선국과 교신한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주거 상황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파트 옥상에다가 20m짜리 안테나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누가 허락해줄까)

아무튼 그렇다. 이제는 슬슬 사라져가는 취미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고, 나 역시 이미 발을 담가버렸으니 꾸준히 하고 있는 그런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만약 내가 아주 높고 외딴 지역에 혼자 살고 있다면 하루종일 무전기를 붙잡고 살았겠지만, 인터넷이 이렇게 잘 되는 세상에서는 그저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 하며 지내는 자그마한 장난감 같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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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깼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카구라를 보고 가자

카구라(神楽)는 일본 신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론 신사마다 대동소이하고 이세신궁 카구라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데, 뭐 그렇다고 대단한 차이는 못 느끼겠다.
위 동영상의 경우 아주 잘 한다고는 못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일반적인 카구라를 보여주고 있다.

아… 뭐 카구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난 김에 동영상 찾아서 본 것 뿐이다.

그저께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센터장에 대한 건은 선수를 쳐서 내가 안하기로 했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칭병으로 성공적인 방어를 했지만 같이 갔던 성형외과 선생님 입장에서는 짜증이 많이 났겠지. 나야 내가 안하면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신경쓰지 않을 상황이었고 내 입장에서는 잘 피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방어에 성공하고 나니 내 고민의 절반이 증발하는 쾌감을 느꼈다.
두번째는 밤에 별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쳤다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강원도 철원까지 1.5시간을 달려 백마고지 전적지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래도 나와 같은 의도로 온 것 같은 차가 한대 서 있었고, 약간의 짐을 차 앞쪽 빈 공간에 내려놓은 것을 보았다. ‘우와 오늘은 정말 보기 드물게 다른 분하고 같이 별사진을 찍겠구나’ 하면서 차를 세웠는데 웬걸. 하늘에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일기예보나 위성사진에서 밤에는 맑을 거라는 예보가 있어 일단 삼각대와 마운트만 설치해 놓고 세 시간을 기다렸다. 날씨는 기다려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슬슬 허리가 시큰거렸다. 몸살이었을까?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밤 10시가 되어 짐을 챙기고 출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쉬웠던 점은 출발하고 나니 하늘이 맑아져 많은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밤 10시에 별이 보여도 새벽까지 촬영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대로 집을 향했다. 또다시 1.5시간 동안 운전을 했고, 오늘은 Jeep을 모는 음주운전이 강하게 의심되는 인간을 만나 조심해서 추월하고 집에 도착했다.

1년은 365일이고 한국에서 밤하늘이 맑은 청명일은 10~20일이 전부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한 1년은 54주이며, 주말에만 나갈 수 있으니 많아야 54번 출사를 나갈 수 있다. 이 두가지가 완벽하 맞아 떨어질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렇게 따지만 난 별을 보러 가고 싶어도 쉽사리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겠는가. 날씨에 영향을 받는 취미라는 것이 원래 이런것을. 다만 장비는 시간이 가면 낡아가는데 그만한 가치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아무튼 다시 좀 자야겠다.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건강에 좋아보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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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심하다

일단 어제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전문 간호사 한 명이 더 와줘서 훨씬 수월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2일전 수술할 때는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꾸욱 잘 참고 침착하게 끝냈다. 뭐… 앞으로 어찌될 지는 환자에게 달려 있는 거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받는 문제는 환자와 관련된 것들이 아니라 병원 행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선 어제 수술한 환자의 2회 수술료 중에 ‘재료비’만 3,000만원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오예! 돈 벌었다!”가 아니라 병원이 먹는 돈도 아니고 내가 먹는 돈도 아니고 순수하게 재료상에게 재료를 받아 가격 그대로 환자에게 제공하는 재료비가 3,000만원 나왔다는 것이다. 이건… 불행하게도 정부에서 전혀 부담을 해주지 않는 부분이고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아침에 이 이야기를 원무과 입원담당 직원에게 알려주니 입을 앙 다물었다.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좀 알려달라는 아쉬운 소리에 미안하다고 굽신굽신 한 후 자리를 옮겼다.
분명히 난 방금 ‘재료비’만 3,000만원이라고 했다. 그래. 지금까지 입원해서 들어간 전체 금액이 이미 5,000만원에 달하고 있다는 소리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맞벌이 부부의 남편인 이 사람이 과연 이 돈을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뭐 정부에서 ‘재난적 의료비’라는 것을 2,000만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재난에 가까운 돈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이게 과태료 같은 것이었다면 시청 앞에서 드러누워 버릴만한 돈이다.

사실 오늘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 환자의 의료비 문제로 사회사업실부터 원무과까지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동일한 화상범위의 고령 환자가 나타나 내 명절이 엉망이 된 것도 아니었다.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센터장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원장 만날 생각에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하고 짜증이 났다. 만나서 뭐라고 이야기 할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이렇게 말할때는 뭐라고 대답할까 등등의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진짜 어제는 이 문제로 자다가 꿈까지 꿨고 밤새 네 번이나 일어나 이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시키려는 이유를 모르겠고, 불편하디 불편한 자리까지 불러내 먹구멍에 넘어가지도 않을 식사를 하며 계속 부정어를 뿜어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 난 단 한푼도 대장질 할 생각이 없고, 이런 무의미한 주제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설치고 싶지도 않다. 말 그대로 권력과 담을 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며 주는 봉급 받으며 살고 싶은데 진짜 사람 가만 두지를 않는다.

진짜… 내일 점심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고 더 이상 이딴 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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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좀 내비둬

병원의 화상센터장이 공석이라고 한다

약 1개월 전에 갑자기 응급의학과 과장님이 날 불러서 웬일인가 하고 갔는데, 나에게 화상센터장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며칠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본 후 거절을 했는데, 이후부터 계속 센터장을 하라고 연락이 오고 사람이 찾아오고 그랬다. 심지어 어제는 부원장님이 직접 찾아와서 화상센터장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또 거절했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부원장님이 연락을 해서 이번주 금요일에 원장님이 만나자고 했다고 했다.

딱히 다른 이유는 아니다.
그냥 건강이 안좋아서 그렇다. 인턴 1년과 전공의 4년, 그리고 전문의 5년을 지내면서 계속되는 당직과 수술로 몸이 엄청나게 축이 났고,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요즘도 약을 먹고 진료를 보고 있다. 매일밤 약을 먹고 자도 두 번은 반드시 깨서 방황하다 잠이든다. 이런지 벌써 수 년째가 되고 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니 낮에 만성 피로와 예민한 감정으로 일을 하다가도 한번씩 욱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혼자 곰곰히 생각해 봤을때 이런 모든 증상은 충분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고, 불충분한 휴식은 낮은 수면의 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당직을 서지 않고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수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약물이나 기호식품을 피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이렇게 자세한 사정을 직장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 적은 없다. 말 해봐야 득도 되지 않을 것이고, 쓸데없는 소문이 나는것이 싫어서 그랬다. 그래도 분명히 이번 화상센터장 임명 문제때 ‘건강상의 이유’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싹 무시하고 계속 센터장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어제 오후에 부원장님이 새로 만들고자 하는 화상센터의 도면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걸 보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rule

위의 자료는 정부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화상응급센터의 건립 기준인데 중환자실 병상이 8개, 일반입원실의 병상이 30개 이상을 가져야 하며 멸균병상을 2개 가져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설계도는 이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형태였다. 뭐 당장 보기에는 그런가보다 하지만 병원 리모델링에 화상관련 정보를 제공해 줄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하도 뭐라 하기에 찾아본 자료와 비교해보면 말도 안되는 자료였다.
중증화상환자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감염관리’다. 피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방어기능이 없어진 상태라 어떻게든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 기준이나 병원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에는 “개방된 형태”의 중환자 병상 8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개방된 병상이라고?! 몇 년전에 인도(India)에서 건립한 화상센터 논문을 봐도 집중치료실은 전부 격리실이었다. 심지어 각각의 방을 HVAC으로 철저하게 관리하는 형태였다. 근데 정부 기준은 말도 안되는 개방된 병상 8개를 기준으로 삼고 있었고, 가장 흔하게 교차감염이 발생하는 처치실의 운영을 권고하고 있었다.

….이대로 설계가 끝난다면 당연히 화상센터 인증은 받을 수 있겠지만, 어디 광고하기도 창피한 웃기지도 않는 기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화상 전문의 한 명 밖에 없는 우리병원에서 집중치료실에 총 10명의 환자를 보라고 주장하는 경영진 측의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상 총체표면적 50%가 넘어가는 중증 화상환자의 ‘내’ 사망율은 90%에 달했다. 물론 살아난 사람도 여럿 있기는 했지만 복잡한 상황과 문제 때문에 많은 환자가 사망했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서 열 명을 보라니. 나보고 죽으라고 말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주문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중증화상 환자가 내 환자로 3명 이상 있으면 반드시 사망이 발생했다. 3명이면 2명이 사망했고, 4명이면 3명이 사망했다. 운이 좋아 2명이 살아난 경우도 있지만 중증화상 환자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고 진짜 담당의사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환자가 살아나기 때문에 의사인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병원은 세 명의 성형외과 의사와 한 명의 외과의사(나)가 있는 상태이고 실제로 중증화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이런 상황에서 도합 열 명이나 되는 화상환자를 받으라고 하는 건 입원시킨 환자들 보고 다 죽으라고 하는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인력의 확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없으면서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마인드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화상 응급센터’가 되면 앞으로 더 이상 화상환자를 타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여기가 무슨 지옥 문턱도 아니고 들어오는 환자보고 다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원장님 자체가 응급실 출신 의사이기 때문에 ‘응급센터’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나라도 원장이 되면 ‘외과 중심의 병원경영 정상화’같은 안이안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건 좀 아닌것 같았다. 남들은 집중치료실을 전부 격리실로 만들고 헤파필터 설치하고, 헤파필터를 통과한 공기를 다시 자외선으로 살균하고, 침상의 모든 의복과 천을 일회용 플라스틱 시트로 바꾸고 있으며 소독기를 통한 개별 샤워기까지 설치하는 마당에 ‘개방된 형태의 집중치료실’이나 만들고 교차감염의 산실인 공용 처치실이나 만드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당장 화상응급센터 개설했다고 광고하면 전국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데 정말 무슨 생각인지..
이 상태로 센터장이라도 되었다간 동네 병신으로 인증되어 조롱이나 받을게 확실해 보였다.

물론, 화상센터장을 했다고 말하면 취직자리가 조금 더 많아지긴 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특수 화상을 보는 유일한 병원의 화상센터장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오오~’ 해 줄 것이고 나도 경력에 한 줄 더 써넣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난 건강이 안좋은데다 이런 병신같은 형태의 화상센터를 내 이름으로 건립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두고두고 조롱거리나 될 센터에 내 이름을 새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절대 다른 곳으로 전원시킬 수 없는 화상 중환자를 열 명이나 채워넣어 시체장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금요일에는 어떻게든 못한다고 버텨볼 생각이다. 무슨일이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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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면 잠을 못 자는구나

이번주의 제일 힘든 날이 지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아무것도 못 먹고 수술에 들어간 것은 폐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제, 아침 8시 30분 부터 저녁 5시까지 수술실에 있었다. 중간에 딱 30분 쉬고 물 한잔 못 먹고 계속 수술만 했다. 달랑 두 케이스였지만 둘 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수술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비실비실 집에 와서는 아내가 강제로 먹이고 있는 샐러드를 먹고 샤워하고 그대로 잤다. 새벽 두시 반 정도 되어 한차례 깨고는 아침까지 잠들었다.

내과의사와 우리가 다른 부분을 잠시 생각해보면, 외과는 평소에는 멍때리며 가만히 있다가 수술을 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점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내과 의사들은 환자의 진단 부분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데이 트래이딩 방식이고, 외과 의사들은 수술할 때 모든 에너지를 쏟는 한 철 장사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정말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느끼는게, 내과의사들은 꼼꼼하고 집요한 반면 외과 의사들은 앞 만 보고 달리는 레밍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의식의 흐름이 극명하게 달라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뭐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못났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모두 의사인데 각각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보면 되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자신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는 XX과 의사 할래!’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조금 한심할 때도 있다. 이건 100% 직업이기 때문에 유행하는 과라고 지원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통받으며 지내는 의사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과를 하든간에 무조건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사실인데 맞지도 않는 옷을 입듯이 억지로 유행하는 과를 선택하는 것은 골병들어 일찍 죽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무슨과 의사를 하든간에 굶어죽지는 않는데 말이다.

아무튼. 흠흠…
어제는 너무 힘들었고,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데 내일 또 수술이다. 어제 수술한 환자의 수술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당분간 계속 수술을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 명절인 것이 가장 큰 문제기는 하고 말이다. 참 이상하지? 유독 난 명절 전후해서 환자가 많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명절을 지내본 적이 거의 없다. 이것도 일종의 천성인가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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