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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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0일 경향신문 7면 SK하이닉스 전면광고에서

이 이야기부터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우선 난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어떤 문화의 우월성을 지지하지도, 특정 사상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한국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한다.
올해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여러가지 행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광고가 신문 지면에 실렸다.

괜히 눈물이 났다. 요즘 여러가지로 지쳐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늙어버려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사진속 사람들의 평범하기 평범한 얼굴들을 보며 괜히 눈물이 나왔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보다시피 잘 생기지도 부유해 보이지도 않는 저 사람들은 임시정부라는 자그마한 간판을 붙여놓고 열심히 무언가를 토론했겠지. 서구 사상이 어떻고, 현재 정세가 어떻고, 공산주의가 어떻고 오만가지 이야기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자기들끼리 멱살잡이를 할만큼 격렬하게 논쟁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담배만 뻑뻑 피우며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을것 같다.

저 사람들은 꿈이 있었다.
사상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현재의 불합리함에 대항해 격렬하게 싸우려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소외받지 않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토론하고 헌법을 만들었겠지.

그냥. 그냥 그렇다.
오늘 일을 하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죽어버리면 끝인 인간인 주제에 다음세대에게 더 밝은 미래와 꿈을 남겨주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생각했다. 2019년 행복 보고서라는 것이 나왔는데, 한국의 20~30대는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고 한국의 여성들 역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취업난, 성차별, 의식주의 불안정성. 이 모든 것들이 한국사회의 젊은 사람들에게서 꿈을 앗아가고 있고 그들을 그저 먹고자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다음세대에게 꿈을 꿀 수 있는 미래를 주는 것,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줘야 하는 것이 앞선 세대의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젊으나 늙으나 먹고 살기 바빠서 남들은 버려둔채 내 것만 챙길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먼저 태어났으면 조금이라도 뒤에 오는 사람이 잘 될 수 있도록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불합리함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데….

그저 부끄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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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근황

신경쓰이는 일, 그리고 머리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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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진 넣어보고 싶어서 넣었다.

좀 많이 바빴다.
어리석은 행동일 수도 있고, 무의미한 행동일 수도 있다.
논문 연구계획서 쓰고, 이런저런 서류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제 기관윤리위원회(IRB, 하려는 연구가 연구윤리에 부합하고 문제가 없는지 평가하는 위원회) 제출용 서류는 다 끝났고 전문간호사들 서류만 받으면 될 것 같다. 이거 제출하고 대충 한 달을 기다리면 결과가 나오니까 그때부터 연구 시작하면 된다.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류 작업이야 나 혼자 하는 거니까 큰 문제는 없었는데, 시약과 이런저런 문제들이 말썽이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더 그랬겠지?
이번에 연구를 위해 pH미터라는 제품을 구입했는데 이 녀석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오차보정용 시약이 필요했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하는 연구이다 보니 시약을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반인이나 미성년자에게는 시약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장비 구입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연구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직도 답은 없지만 대학원 석사때 지도교수님이 여차하면 당신이 사서 보내주겠다고 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뭐 아직은 기다려야 하지만 말이다..
혼자 하는 연구. A부터 Z까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니 신경쓰이는 일도 많고 안되는 것도 너무 많더라. 이렇게까지 내가 논문을 계속 쓰려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학회에서 발표하고 인지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런 마음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이것 말고는 귀가 많이 아팠다. 왼쪽 귀를 별 생각없이 주말에 슥슥 팠는데 그게 감염이 되었는지 붓고 아프고 진물나고 정말 고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다 낫지 않아서 지끈지끈 쑤시고 있지만 그래도 며칠 전보다는 좀 낫다. 신경쓰일 일은 많고, 몸은 아프고 정말 최근 열흘간은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내가 잘 살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딱 한번 뿐인 인생인데 나중에 돌아봤을때 후회없는 인생일지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을 따름인데 말이다.

세 시간밖에 잠을 못 자서 머리가 복잡한 김에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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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수술은 없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냥 자주 하는 수술이었다. 아마 100번도 넘게 들어갔을 탈장 수술이었는데 수술중에 피가 났다. 피야 수술하면 당연히 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흔히 탈장수술에서  Triangle of Doom이라는 부분이 있다. 다리쪽으로 내려가는 굵은 신경과 혈관덩이가 지나가는 부위인데 오늘 수술은 바로 이 부위에서 났다.

외과의사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정맥 출혈이다. 보통사람들이야 동맥출혈은 피가 쭈욱 쭈욱 뿜어져 나오니 더 위험한 것 아닌가 생각하지만, 외과의사들 입장에선 출혈부위가 정확히 보이지 않으면서 피가 콸콸나는 정맥출혈을 더 무서워 한다. 흔히들 “출혈부위 찾으려고 석션(피나 물 종류 흡입기) 몇 번 하면 환자 죽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맥출혈이다.
Triangle of Doom 지역은 사람 손가락 만한 정맥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거대한 정맥의 가지 하나가 출혈이 있었다.

정말 다행이도 전기소작기로 지혈이 되었고 손가락 만한 녀석은 손상이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수십만원짜리 지혈제를 턱! 하고 붙이고 수술을 끝냈다.
그래… 차분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 머리가 하예지고 등골이 오싹했지만 집도의가 당황하면 같이 수술하는 모든 의료진이 당황하니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며 처리를 했다. 소독 간호사로 쌩 신규 간호사가 들어와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에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꾸욱 참고 기다려줬다.

수술이라는게,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큰일 없이 끝낼 수 있는 것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술에는 합병증 발생율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합병증 발생율이라는 통계는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수술을 더 잘하게 되면 피할 수 있지 않냐고? 아아… 모든 수술에는 크게 두 가지 변수가 있는데 첫째는 의료진, 둘째는 환자다. 의료진의 술기야 열심히 익히면 나아지지만 환자라는 변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당장 겉으로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경우도 있고, 수술을 들어갔더니 외계인에 버금가는 기이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모든 수술 통계는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일반적인 합병증의 비율을 알려주는 것이라 우리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논문에서 Triangle of Doom의 주요혈관 손상율을 0.2~0.3%로 잡고 있고, 보통 이게 손상되면 환자는 하늘나라 간다. 그리고 난 그 0.2~0.3%에 다가갔거나 다가갈 뻔 했고 말이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탈장 수술을 할만큼 했나 보다. 통계적 합병증 발생율에 점점 다가가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수명이 몇 년 줄어듦을 느꼈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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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고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IRB는 경과보고와 종료보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어떻게 알았겠나.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다른 일(새로 연구할 것에 대해서)로 전화를 했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오늘 급하게 경과 보고서와 종료 보고서를 작성했다.
연구 노트에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하다 문득 이번 연구도 참 힘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다섯 명이었던 연구자 중에 두 명이 못하겠다고 배를 째버렸고 혼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간신히 논문을 다 작성했는데 학회에서 빠꾸 맞고. 뭐 거절 당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전문 연구자가 아닌 평범이의 입장에서는 정신적 데미지가 컸다. 그것 덕분에 이번 저널을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말이다.

얼마전에 계속 연구를 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남들은 학원 간다고도 돈 쓰는데 뭐 그런것 가지고 그래요. 하고 싶은대로 해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연구비가 사비로 나간다는 데도 신경쓰지 않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줬다. 조금 놀라기도 했고 고마웠다.
사실 나같이 사비를 들여 연구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싶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데다 결과가 어찌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나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유든 간에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연구는 돈이 많이 든다. 단순한, 아주 단순한 환자대상 연구를 하려고 해도 비용이 소모된다. 피검사 하나를 하려고 해도 오차를 줄이기 위해 2회의 검사를 하도록 하고 있고, 장비를 사려 해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 거기다 논문을 영어로 쓴다면 영어 번역자에게 유료로 부탁을 해야 하고 논문이 개제되면 그에 따른 출판비도 자비로 나가게 된다.
설마 이것만 있을까. 연구용 노트 구입에 각종 서면 자료의 보관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전산자료도 깨끗하게 정리해 백업해 둘 공간도 있어야 하고.. 그냥 연구는 돈이다. 돈이 든다.
우리 병원의 경우 논문이 나가면 저자에 대해 100만원의 성과금을 주는데 연구에 드는 돈을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는 정도다. 번역+개제비만 100만원은 나가는데 말이다.
뭐, 자꾸 생각하면 씁쓸해 지니까 그만 생각하기로 하자.

사실 나도… 내가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연구를 하고 있다. 혹시라도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하게 될 때를 대비해 ‘혼자서 이렇게 성실히 수술하고 연구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 나같이 전문분야가 돈이 되지 않아 직업이 불안정한 사람이 계속 팡팡 놀기만 했다고 보여지면 안되잖아. 그렇게 좋은 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예를들어 내가 잘 모르는, 차도 없고 걸어서 일주일을 가야 의사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동네에 내가 한 연구의 결과가 알려져 그 지역 의사가 환자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가끔이지만 이런 상상을 한다. 물론 이렇게 대단한 연구를 한 적은 없다. 그냥 마음이라도 이런 상상을 한다는 거지.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나도 잘은 모른다.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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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고민

적절한 연구방법론이나 논문 작성법 교육이 있다면 난 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뭐..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약간 공부했다는 것도 부정은 못하겠다. 그냥 내가 하고싶은 말은 어찌보면 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학원도 다녔고 석사도 받았지만 지도교수 밑에서 꾸준히 관리 받으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바쁜시간을 쪼개가며 다닌 대학원이고, 논문도 지도교수님이 정해준 것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연구한 것을 정리해서 제출했다.
물론 지도교수 밑에서 수년간 공부하면서 Ph.D.까지 딴 사람과 날 비교하는 것을 당치도 않는 일이겠지만, 아무튼 연구방법론이나 논문 작성법을 혼자서 주먹구구로 공부한 것이다 보니 전문가들에 비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늘도 오전 내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쓸까 고민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엔, 국내 논문의 경우 제1저자에게 50만원, 해외 논문의 경우 모든 저자에게 1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그렇지만 영어 번역비가 거의 100만원이 나가는 데다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라 아무 의미없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논문 쓴다고 레퍼런스 찾는데 들어간 비용, 연구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기타 재료값 같은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으니 논문을 쓰면 이름 하나 올리는 것이 전부라고 할밖에.
물론 대학병원들도 비슷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걔네들은 연구 코디네이터도 지원을 해주고, 번역비도 지원을 해주고, 연구비도 일부 나오니까 나랑은 차원이 틀리지.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왜 연구를 했냐고 묻는다면 ‘향후 이직을 대비해서’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런저런 논문을 읽고 공부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연구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n수(표본수)가 너무 적은 환경과, 관련된 어떤 비용도 지원해주지 않는 내 환경을 생각하면 몇 차례 머리를 굴리다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해보고 싶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말이다. 그냥 남들처럼 논문이나 가끔 읽고 놀러 다니는 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모든 선택은 오롯이 나의 결정이지만 지금도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논문을 쓰면 항상 내가 가지고 있던 설명할 수 없는 열등감이 나아지려나?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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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WoW) 고인물

요새 좀 놀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친한 형과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조금씩 하게 된 것도 있고, 4월달 부터 다시 당직을 서게될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미리 많이 놀아두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근1~2주간 딴 생각 안하고 놀기만 했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놀면서도 술은 전혀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일까? 누가 뭐래도 술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맞으니까 뭐. 특히 나처럼 한번 마시면 맥주를 꿀꺽꿀꺽 하는 사람은 안마시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마셔서 좋을게 없으니까..

와우는… 벌써 15년 된 게임인데, 내가 처음 해본것은 약 11~12년 전인 것 같다. 공중보건의 하면서 혼자 공부하는 것도 지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꽤 재미있어서 1년 정도 했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또 한달정도 했고. MMORPG라는 게 워낙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 정말 할 것이 없을때만 했는데도 벌써 세 번째 플레이가 되었다.
딱히 무엇인가를 죽이고 게임내 돈을 모으는게 재미있어서 하지는 않는다. 아무 의미없는 노가다를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리니지 같은 게임은 손도 대지 않았으니까. 와우가 그런 게임과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나름의 서사가 있고 게임 안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아서이다. 캐릭터의 레벨이야 알아서 오르는 거고 몹이야 잡으면 그만인데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나름의 이야기가 있어 그 이야기 보는 재미로 한다고 할밖에.
물론… 나도 어떤 면에선 와우의 고인물이라고 하겠다. ㅋ

또 어느정도 기간동안 할 지 잘 모르겠다. 이번달까지만 하고 치울 수도 있고, 몇 달 더 해보다 그만둘 수도 있겠지. 다시 말하지만 MMORPG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 먹는다. 그 시간동안 읽을 책과 논문이 한가득이니…

그래도 하는 동안은 즐거우니 잠시 쉬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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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길

이번주는 계속 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월요일 수술에 너무 많은 체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내 고민의 40%를 차지하고 있던 환자의 마지막 수술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고, 초기 세 번의 수술이 세균감염으로 망쳐져서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세균 감염만 잘 조절되었으면 벌써 걸어 퇴원했을 환자이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고.

뭐… 다시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환자였다고 생각한다.
당뇨만 달랑 있는 환자가 아니라 각종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과체중 환자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중증화상 환자는 기초대사량의 150~200%정도 열량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 환자는 혈당 조절이 엉망이라 이대로 주면 혈당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제대로 열량 공급을 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과체중이다 보니 식사를 조금만 많이 공급하면 배가 남산만해져 (스트레스 상황에선 장운동이 떨어지는 데다 당뇨에 의한 합병증으로 위장의 내용물 배출이 지연됨. 다시말해 소화가 잘 안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셋째론 당뇨로 인한 만성신부전이 진행중에 있어서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계속 이뇨제를 써야 했고, 특히나 대량의 수액이 들어가는 화상이다 보니 툭하면 전신부종에 폐부종이 와서 호흡곤란이 발생했다. 더해서 목이 짧고 굵고 입이 작으며 과체중이다 보니 첫 수술 들어갔을때 기도삽관이 제대로 안되어서 저승 절반정도 다녀왔다는…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이었다. 수술하고 나면 몸에 물이 차고 목에도 물이 차서 호흡곤란으로 응급 기도삽관 하고 심정지도 발생하고 정말… ㅠㅠ

환자를 치료하는게 내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환자였다. 뭐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환자 보호자는 진료비 많이 나와서 고통 받고, 환자는 아프니까 고통받고 나는 환자가 내 맘만큼 치료가 되지 않아서 고통 받았다. 그래도… 진짜 그래도 무사히 살려서 집에 보낼 수 있을것 같다는 확신이 드니 마음의 짐이 다소 덜어짐을 느끼고 있다.

환자는 나아가지만 조금 후회스러운 것도 몇 있었다.
우선 아무리 과체중이고 당뇨가 심해도 초반에 더 공격적인 영양 공급을 했다면 세균감염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 더 신장내과에 내 의견을 피력해서 투석을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마지막으로… 분명히 3:1 메쉬 플레이트 (이식할 피부에 구멍을 뚫어 늘려주는 장치. 3:1이면 가로로 3배 늘어남)를 사용했는데 6:1이 튀어나온 빌어먹을 회사 놈들을 조져주지 않은 것도 아쉽고. 그 놈들 덕분에 가뜩이나 상태 안좋을때 한 수술이 완전 망해 버렸다. 항의를 해도 고작 메쉬 플레이트 교환이나 해주겠다니… 정말.

아무튼 지금 돌아보면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자료 찾아보며 지냈던 내 삶과, 여러명의 환자를 잃으며 체득한 지식이 이 환자를 살리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시체의 길을 걸으며 얻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잃어가며 성장하는 거니까.

오늘은 3월 20일이다. 적어 놓았던 글이 사라져서 이제는 정확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년전 난 이 날 환자 한명을 잃으며 내 지식의 짧음과 실수에 대해 한탄했고 내 나름의 기념일로 정해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래… 또 힘 내서 망자의 길을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