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는구나…

어제 전기화상 환자 수술을 했다

특고압 설비를 수리하다 다친 분이었는데 심하게 다치셨다. 병원에 오자마자 근막절개를 했고, 수술소견상 절단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분은 그래도 최대한 절단하지 않는 쪽으로 치료해 달라고 했고, 어제 괴사조직들을 제거하기 위해 가피절제술을 하러 들어갔다.
엉망이었다. 이미 근육과 말단부위는 괴사가 진행중에 있었고 죽은 살을 깎아내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고 세포액과 혈청만 흘러나왔다. 이 조직은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이 끝나고 보호자분들께 사진을 보여드리며 살릴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보호자분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서둘러 짐을 싸고 퇴근한지 한 10분 되었을까?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와서 보호자분이 급히 면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S모 병원으로의 전원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여기서 살릴 수 없다면 더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오늘 수술직후라 전원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아침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조금 있으면 면담을 해야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설명을 충분히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부드럽게 말을 해서 그런 것인지 보호자분들은 이미 죽어버린 사지를 어떻게 잘 치료하면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벌써 이런 식으로 수차례 전원을 보냈다. 뭐 받는 병원에서야 땡큐지. 적절한 처치를 했지만 살릴 수 없다는 평가를 해줬으니 받아서 보고 못 살린다고 해도 부담이 될 것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산업재해 환자는 심한말로 금싸라기 같은 존재라 일반 의료보험에 비해 보험되는 범위도 훨씬 넓으니 말이다. 난 그냥,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많은 전기화상 환자를 봤고 이제 다른건 몰라도 전기화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병원의 이름을 보고 떠나니 말이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전기화상은 내가 속한 병원이 한국에서 제일 잘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기화상을 본지 아주 오래되기도 했고, 그만큼 경험이 쌓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은 계속 전기화상을 보고 있으니 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무 투자도 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10년 이상이 흐르며 시설투자와 인력투자를 간과한 결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기화상 하면 우리병원이던 사람들의 생각도 화상하면 S병원이라고 각인이 되었고, 그 동안 꾸준히 환자를 보아왔던 의사들은 다 떠나고 없게 되었다. 이젠 나 혼자 남았다. 어쩌겠는가. 그냥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병원의 운명인가 싶다. 나역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 병원에서 사비를 들여가며 연구를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고 병원은 신포괄 수가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중증화상을 볼 때마다 적자폭이 커지는 구조가 되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병원정책이라는 것은 나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화상환자를 제대로 많이 보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것도 안될 것이 뻔하니 그냥 포기하고 살기로 했다. 그래도 봉급은 나오니까 봉급 나올때까지만 열심히 일해주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 다른 병원이나 알아보든지 아니면 요즘 인기가 있는 호스피탈리스트를 알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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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을 너무 못 잔다

밤새 세 번 깨는 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어제도 조금 일찍 잠이 들었는데 밤 12시에 깼다. 그로 2시, 3시, 4시에 한번씩 깼고. 환자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환자가 늘고 나서 유독 자다가 깨는 일이 많아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이 들고, 낮에도 피곤을 많이 느끼고 있다. 뭐 주관적인 느낌은 잠을 잘 못자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힘이 드니까 지치고 쉽게 짜증이 나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직 해결해야 하는 환자가 세 명이나 있는데, 신경써서 자료 찾아보고 살펴야 하는데도 자꾸 피하고 싶어진다. 물론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해야할 일을 다 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내 자신을 붙잡아두는데 많은 힘이 든다. 하아… 아무튼 잠을 좀 더 잘 자야하는데 자지 못해서 걱정이다.

어제 낮에는 내가 근무시간동안 무얼 하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근무시간에 놀고 있는게 아닌지 문득 궁금해서였다. 그랬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ㅎ;
외래 시간에는 외래를 보고, 외래가 없는 시간에는 수술을 하거나 환자 드레싱을 보고, 또 그 동안 찍은 사진자료를 차트에 붙이고 논문을 읽고 그랬다. 하루 8시간 근무로 되어있는데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고 할까? 지금 받는 봉급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내 분야의 추세를 따라가는 일도 사실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SCI급 논문이 매달 수십개씩 나오고 있는데 그걸 짬짬이 읽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고, 읽고나서 내용을 정리해 놓는 것도 큰 일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그 일을 해오고 있었으니 조금 나 자신에 대해 칭찬을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거의 독학에 가깝게 화상을 공부했는데,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자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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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응급실 콜을 받았다

너무 피곤하다. 아침 출근하며 울고 싶었다

아침에 출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써클을 봤다. 분명히 어제 쉬기는 했지만 그냥 온 몸이 힘들고 지친다. 1월달부터 중환자들 때문에 계속 강행군을 하는 느낌이다. 집에서도 매일 컴퓨터로 환자 상태를 보고 있자니 집에 와서도 집에 오지 않은 기분이다. 온 몸이 축축 처지고 그저 드러눕고만 싶은 마음. 이걸 보고 지쳤다고 표현하는게 맞겠지.

총 세 명의 중환자 중에 한 명은 일반병동으로 갔고, 한 명은 상태가 나아졌고, 다른 한 명은 사망하셨다. 지금 신경쓰는 것은 일반병동으로 간 환자와 상태가 나아진 환자인데, 상태가 나아진 환자는 최근에 양쪽 다리의 피부이식을 했지만 세균감염으로 이식실패가 일어나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씁쓸하기도 하고 답답한 기분이다. 뭐 1/3이라도 붙었으면 좋았을텐데 어제 상태를 보니 거의 다 녹아버렸다. 환자분께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일반병동으로 간 환자도 녹록치가 않은 것이, 어제 봉합한 부분이 안정되면 다음주에 팔을 배에다 심어서 근육과 인대를 덮어야 한다. 양쪽 팔을 다 다쳤으니 오른쪽에 3주, 그리고 왼쪽에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다 낫는데까지 대략 8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사이에 난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게 되겠지. 뭐 지금 있는 환자들 다 정리되려면 6개월은 걸린다는 말이 되겠다.
환자들의 돈도 돈이지만 내 멘탈도 탈탈 털려나갈걸 생각하니 왠지 온 몸이 아프네.

그래도 뭐… 다 잘 나아서 집에 갈 수 있도록 신경써봐야지. 내가 지치면 환자가 죽더라.

오늘도 ‘넌 슈퍼맨이 아니야’ 라는 말을 떠올리며 힘이나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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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돌아오는 월요일

지난 주말은 뭐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계속 잠자고 술만 마신 것 같다. 뭐 이렇게 말하면 알코올 중독 같아 보이겠지만, 토요일에 술 먹고 잠들었다는 말이다. ㅋ
금요일에 퇴근하려는데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퇴근했고, 그렇게 집에 와서 잠시 이런저런 것들 정리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에 맥주를 마시고 잠에 들었는데 그 사이에 환자분이 사망하셨다. 이 소식을 일요일 오전에 알게 되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그래도 버티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나이는 화상에서 최상위 위험인자인지 나이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신 것 같았다.
백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연한 것이지만 사망 후 발생할 보호자분들의 항의나 민원등에 대한 생각도 했고, 의학적으로는 어째서 사망했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지금 환자 상태를 되새겨봐도 딱히 답이 안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폐색전증을 앓았던 분이라고 하더라도 혈액검사상 급격한 혈압감소와 함께 동맥혈산소분석상의 산소감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기각인 것이고, 심근효소 수치가 사망직전까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근경색도 기각인 것이고, 탈수라고 말하기에는 사망전 2일간 충분한, 어쩌면 다소 많은 수액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각이다. 마지막으로 패혈증에 의한 사망이라고 하기에는 항생제 변경이 있었으며, 전방위 항생제를 사망 48시간 전부터 투여했으니 그것도 아니겠지. 결국 남는 것은 급성 심부전에 의한 사망 정도만 남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동맥혈 산소분석 상에 산증이 보이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다.

왜 사망하셨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딱히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중증화상 보는 의사라고는 이 병원에 딱 하나, 나 혼자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저 혼자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하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복기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내 친구들은 나보고 ‘넌 슈퍼맨이 아니니까 무리하지 마라’고 다독여 줬고 나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이제는 너무 힘들다.

1월달 안에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망할 병원은 아직도 당직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후 5시 30분 이후에 병원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경우에 대한 추가임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전문간호사들도 야간에 남아있는게 돈이 안되는 상황에서, 환자를 생각한다며 아무 임금도 받지 못하며 병원에 남아있는 것도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평범하게 봉급받는 의사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병원이 환자를 담보삼아 위협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게 좋은 일일까..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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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과 동물을 키우는 것

내가 냉정한 동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성인이 되면 그 이후의 삶은 내가 관여할 바도, 관여를 해서도 안되는 거지만 미성년자일때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본다. 아이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먹고 입고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게 부모이고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것으로 규정된 것들을 못하게 하거나 옳은 방법으로 규정된 것을 하도록 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사회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부. 과거의 세계는 사람이 성인으로 거듭나 경제활동을 할 때까지 그다지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거주지역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만 충분히 숙지시키면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아주 기본적인것도 한참을 공부해야 할 만큼 공부할 것이 많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담아두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도 늘었다. 그만큼 공부는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는데 문제는 이놈의 공부가 정말 재미없고 하기 싫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감정적 관계라 아이의 감정이 사방팔방에서 분출된다. 특히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날 워낙 무서워 하기 때문에 – 집에서 잔소리하고 혼내는 것이 나밖에 없다 – 그리고 아이 엄마와 나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아이 엄마에게 교육을 맡기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아이를 보니 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나눗셈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구구단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결국 며칠전부터 구구단을 매일 시험보고 있다.

아마 우리 아이도 나이가 들고 날 생각할 때면 ‘무섭고, 혼내고, 공부 지독하게 시키던 아버지’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공부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라 ‘공부는 절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도 부모로서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 자체에 혐오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원래 공부라는 것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인데 그걸 재미없으니 안해도 된다거나 피해갈 수 있는 것이라 느끼게 하면 바보 되는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특히나 싫어하는 과목에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벽. 그 벽을 깨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점도 말이다.
어제 아이는 구구단 외우는 게 싫어서 저녁 9시에 처가집에 갔다가 밤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아이 취침시간이 11시 전이었으니, 제 딴에는 ‘오자마자 잠을 자야 하니 구구단 안외워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겠지. 미안, 아이야. 아빠는 그렇게 느슨한 사람이 아니란다. ㅠㅠ
결국 또 펑펑울고 구구단 다 외우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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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나고 있고 난 하늘을 본다

장장 5일간의 휴일이 끝나고 있다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거의 1년동안 소식이 끊겼던 미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가 다시 메일을 줬고, 정말 감사하게도 다시 공부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난 명절동안 ‘너의 이름은’ 영화를 봤고 돈도 못 받으면서 병원에 한차례 출근했으며 오늘이 되었다.

트위터 친구가 얼마전에 그런 말을 했다

명절보다 쓸모 없는 휴일도 없을 것 같다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지만 명절보다 무의미한 휴일도 없을 것이다. 보통의 휴일이라고 한다면 가고 싶은 곳을 간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데 명절은 그럴 수가 없다. 휴일중 상당 부분을 할애에 고향이나 부모, 그리고 친지를 만나러 가야 하고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식사를 해야하고 이야기 나누기 싫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듣다보면 화가 나는 수많은 고나리질을 받아줘야 하는 이상한 휴일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휴일”
난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래도 난 마음고생이 심하진 않았지만 토, 일요일 내내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병원 전화를 받고 처방을 넣다가 월요일에는 잠시 병원에 나갔고, 그날 저녁 처가집 식구들과 식사를 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부모님 집에 가서 하루를 보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오늘에 다다랐다. ‘5일이나 되는 휴일동안 무얼 했니?’라고 묻는다면 한숨만 나오는게 사실이다. 무의미하게 흐르는 시간. 그리고 무의미한 행동들에 가득 싸여 명절이라는 이름의 이상한 휴식을 취했다.

Mars_Hubble

문득, 다시 화성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속 13km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몸을 실어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우주를 항해해 화성에 가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종종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이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 간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죽음의 위험에 봉착하게 될 것이고 삶이 더욱 빡빡해지는 것을 느끼고 겪으며, 살기 위한 투쟁을 하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사고나 식량부족, 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게 될 거다. 우스운 일이다. 가면 죽을게 뻔해 보이는데도 붉고 차가운 화성에 가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있다니.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갈망을 ‘화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겠지? 여느때보다도 삶이 풍족하고 어려운 일이 없는 지금인데도 난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찾으며 붉게 반짝이는 작은 행성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언제가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못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에 반짝이는 그 별을 보며 항상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매일 그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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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아마추어 무선

오늘도 VHF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마추어 무선(HAM)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일반인들이 취미 목적으로 무전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을 하는 것인데, 원래 이런 교신이 전세계 무선통신의 시초였다고 한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무선통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연구자들과 아마추어들이었으니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게 발달해서 현재의 CDMA나 LTE가 된 것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무전기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안테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교신하는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자유민주국가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무선을 허용해주고 있고, 이들을 위한 공용 주파수도 제공을 해주고 있다(주파수는 국가의 재산이다). 원래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무전기와 안테나를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 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맑고 깨끗한 음질로 먼 지역까지 교신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는데, 한국에서는 ‘무전기와 안테나등 제반 설비에 대한 임의 변경’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그냥 무전기로 교신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래도 북한과의 문제가 있어서 다른나라보다도 훨씬 엄격한 제한이 걸린 거겟지.

음.. 난, 그냥 시작했다. 이거 하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거다. 난 아마추어 무선 3급 전화급 자격증을 수년전에 땄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시도해보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90년대 말부터 아마추어 무선은 급격한 세퇴기를 맡고 있으며, 현재는 고령의 무선통신사를 제외하고는 내 나이대의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는 나 같이 괜한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무전기가 아까워서 계속 교신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스포츠 목적으로 좀 더 출력이 높은 무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뭐… 스마트폰에 비교해서 아무 장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나마 장점이 한가지 있다면 지난번 KT기지국 화재처럼 통신망이 끊겨버린 상황에서도 무전기를 통해 자유로운 교신이 가능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재난상황에서 고출력의 무전기를 이용해 더 먼 지역에 재난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의 장점만 남아있다고 하겠다. 근데 그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없으니. ㅋ

생각보다 깨끗한 음질로 교신이 가능한 아마추어 무선은 다음의 제약이 있다

  •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시설에서는 옥상이나 베란다에 거대한 안테나를 설치할 수 없어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에 심한 제약이 따른다
  • 통신법에 따라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다른 사람의 소식을 대신 전해줄 수 없으며, 교신중에 암호문과 같이 교신하는 사람들만 아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고 반드시 평문으로 교신을 해야하며,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고, 특정 물건이나 사업체에 대한 칭찬이나 광고성이 담긴 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음담패설, 욕, 비방을 할 수 없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현재의 휴대전화는 통화내용이 기계에 의해 암호화가 되어 전달되는 방식이라 정확한 키(전화기의 고유 아이디)를 알지 못하면 통화내용을 남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 무선은 북한과의 대치문제로 암호화된 교신을 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평문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다. 거기다 이런저런 교신내용에 대한 제약조건이 있어서 일상적인 이야기라든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결국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이야기라든가 날씨 이야기, 무전기 장비 이야기 정도 말고는 할 말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 일단 설치해 놓으면 전기비 말고는 아무것도 드는 돈이 없는 공짜 통신인데 이런 제약으로 인해 할 수 있는게 극히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만약 누가 나에게 ‘아마추어 무선사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근 후회하지!’라고 말 할 것 같다. 베란다에 남들 눈치보면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고, 비싼 무전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니까 말이다. 나도 뭐.. 일단 구입한 물건이니 아깝기도 하고 근처에 나와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저씨가 있으니 하는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버려두고 근처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선배 무선사들은 해외의 무선국과 교신한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주거 상황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파트 옥상에다가 20m짜리 안테나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누가 허락해줄까)

아무튼 그렇다. 이제는 슬슬 사라져가는 취미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고, 나 역시 이미 발을 담가버렸으니 꾸준히 하고 있는 그런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이다. 만약 내가 아주 높고 외딴 지역에 혼자 살고 있다면 하루종일 무전기를 붙잡고 살았겠지만, 인터넷이 이렇게 잘 되는 세상에서는 그저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 하며 지내는 자그마한 장난감 같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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