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글을 쓰려고 준비하며 잠시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꼰대라는 말은 그냥 ‘늙은이’를 부르는 말이라고 하더라. 그치만 세상에서는 꼭 나이가 들었다고 꼰대라고 부르기 보단 남을 가르치려고 들고 자기 얘기만 하고 자기가 항상 옳다고 하는 사람들을 전부 꼰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 그리고 몇 주전 일요일에 부모님 댁에 갔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수명 문제와 태양광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난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수명이 통상 3~5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펄쩍 뛰면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현재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도시에 설치해야 하는 것인데 멀쩡한 산을 밀어버리고 발전단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무조건 태양광 발전이 낫다는 말만 하셨다.
뭐… 집에 와서 찾아본 바로는 자동차 배터리의 수명은 통상 8~10년 정도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 이건 내가 틀렸다. (틀린 이유가 좀 웃긴게,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수명도 일반 휴대폰 배터리처럼 “충전횟수”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난 전기자동차도 매일 충전해야 하는 줄 알았다는 것. 일주일에 1회 충전하면 10년 정도 쓸 수 있다는 말이라 일주일에 3~4번 충전하면 실제로 줄어드는 것은 맞더라)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태양광 발전을 위해 멀쩡한 나무를 싹둑 잘라버리고 산에 설치하는게 좋다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섞인 이야기이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신재생에너지라든가 대체에너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 저것 자료도 찾아보고 전문가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아버지는 예전에 뫄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셨구.

내 이야기가 맞다거나 아버지 이야기가 틀리다는 것은 이 글에서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독선이 심해지고 아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맘에 안들면 울고 때리며 발버둥 치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처럼 고집이 세진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면 ‘꼰대’라고 칭하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 인간이 채집생활을 하거나 농경사회를 했을때 노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다른 이유가 아니리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시기에 어디에 사냥감이나 채집거리가 있는지를 안다거나 어느 시기가 되면 논에 물을 대야 하는지, 모네기를 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렵/농경사회는 기본적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매일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있고 젊은 사람조차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젊은 사람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변하기 때문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고령의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찌보면 현대 사회는 더 이상 고령자의 지혜가 중요하지 않은, 경제력이 있고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의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하겠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야 옛날 사람에 가까운 인간이라 아버지랑 말싸움을 한다거나 강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편이라 그냥 가만히 있어버리고 만다. 뭐라고 하시든,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르든 간에 그냥 가만히 있어버린다. 어차피 말 해봐야 듣지도 않으실 것 이고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분야의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하는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시기 때문이다.
뭐 그래.. 아버진 나름대로 꼰대가 되셨더라.
아마 내가 이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면 난리가 나겠지? 그래서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내는 거지만..
아무튼 꼰대가 안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배웠던 지식을 움켜잡고 있다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꼰대가 되고, 지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 움켜잡고 있다가 꼰대가 되니 말이다. 전에 지도교수님이 이야기하길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계속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젊은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면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던데, 난 여기에 이 말을 꼭 붙이고 싶더라.
말을 더 줄이고, 귀를 더 열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물론.. 어렵다. 유일한 사회적 창구인 친구들 역시 나와 같이 나이먹어 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날 상대도 안해주는데 노력을 해야 하다니..

그냥.. 울 아버지 생각하며 몇 자 적어봤다.

성격

유독 직장생활에서 만난 사람은 나보고 화도 거의 내지 않고 항상 웃는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한 40%는 뻥카가 분명하니 무시하고 보는데, 그럼에도 나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렇지…?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해봤다.
분명히 집에서의 나는 짜증 잘 내고 대답도 잘 안하고 툭하면 삐지고 버럭거리는 나쁜 사람인데 어째서 유독 밖에서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아마… 내가 화를 낼 줄 모르고 말싸움을 할 줄 몰라서 그런것 아닐까 싶다.
내가 화를 내는 방법은 극히 감정적이고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는데다, 화가 나면 날 수록 말이 빨라지며 어느 순간 버퍼링을 하는 편이라 사회생활에는 극히 안좋은 스타일이다. 남들처럼 차갑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으니..
결국 이런 내 자신의 단점을 내가 아니까 사회생활에서는 화나도 참고 말하지 않는 일이 많다. 그래.. 결국 제대로 화를 내는 법을 몰라서 가만히 있으니 사람들이 착하다고 하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요즘은 집에서도 화를 내지 않으니 좋은 것 같다. (응?) 그냥 포기하고, 어떻게든지 분노한 시점을 회피하거든.

건강에 좋은 성격은 아닌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칠정육욕이 있다고 하는데, 난 그걸 제대로 분출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분출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뿐이라 아무래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 병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냥.. 부럽다. 맘놓고 화낼줄 알고, 조리있게 화낼줄 아는 사람이 말이다.

의사놀이

수 일 전에 동료 선생님이 한 이야기였다. “왠지 우리는 의사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만약 여기서 떠나게 되면 제대로 의사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 선생님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겠지만 난 며칠쩨 이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했다.

의사놀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아서다. 나 같은 경우는, 인턴부터 전공의, 그리고 전문의로서 취직까지 전부 지금 병원에서 했고, 다른 곳을 간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바쁘고 힘들게 산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개원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전 내내 외래 보다가 중간에 잠시 시간이 비면 수술을 하고, 오후에도 수술을 하고, 소위 원장이라는 사람이 정해준 규칙에 따라 당직도 서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있는 선생들은 일단 어마어마한 수의 환자를 보는데다가 외래와 수술 사이에 강의도 하고 정치도 하고 논문도 쓴다.
그런데 난… 외래를 보고 나서 수술이 없고 당직이 아니면 내 방에서 쉴 수도 있고, 소위 시간이 있어서 논문을 쓰고 그러고 있으니.
임금..? 물론 내가 조금 덜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무중 자유시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늘고 길게 가는 공무원 같은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개원가의 선생님들은 매주 전체 회의에서 실적발표를 한다거나, 실적이 떨어지면 원장이 개별 면담으로 압박을 주는 일이 허다하다는데 우리는 그런것도 없고 말이다.
말 그대로 ‘알아서 열심히 하면 절대 터치하지 않을께’ 분위기니까 정말 좋은 직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당직은 힘들다. 하기 싫고 요즘은 당직 한번 하고 나면 이틀동안 피곤하고 지치고 그렇다. 아까 일정을 보니 내일이 당직이던데, 그 다음날 외래 볼 때 상당한 피로를 느끼겠지. 뭐 까놓고 말해 월요일 당직 서면 화요일 내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진짜 피곤하거든.

아무튼… 좀 불평불만을 줄이고 얌전히 하라는 대로 일하며 지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보다 팡팡런 할 수 있는 곳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잘 찾아보면 틀림없이 있겠지만, 굳이 지금 상황도 나쁘지 않은데 다른 곳으로 떠날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 자유 시간이 있으니 내 분야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도 쓰레기가 되면 안되니까 말야.

北海道

보통 아내님이 1년치 일정을 전부 정해 놓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바쁜 시기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뭐, 이 시기에 갑자기 중환자가 늘어난 것은 아내의 잘못이랄 수도 없고, 내 잘못일 수도 없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을 때름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일들을 겪은 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나 둘 다 자유여행만 다니는 편이고 뭘 길게 고민해서 일정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라 대략적인 일정만 짜놓고 움직이기로 했다.
첫날은 렌트카를 타고 노보리베츠에 가기로 했고, 둘째날은 후라노쵸와 다이세츠산, 그리고 셋째날은 오타루시를 가기로 정했고, 관광 사이트 몇 개에서 꼭 보라고 하는 스팟을 대충대충 가기로 했다.

노보리베츠 지옥온천
Shot with DXO ONE Camera

지옥온천 또는 지옥 골짜기라고들 하는데, 골짜기 하나가 지열에 의해 나무도 자라지 않고 황이 잔뜩 뒤덮여 있는 형태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황 특유의 달걀썩는 냄새가 가득했다.
딸아이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열화상 카메라를 가지고 갔는데 이런 상태였다.

이것 말고는.. 음.. 위험천만한 국도를 뱅뱅돌아 올라가 오유누마(大湯沼)라는 호수와 쿳타라코(俱多楽湖)라고 부르는 호수를 구경하고 왔다. 뭐 원래는 쿳타라코를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도중에 오유누마가 있었던 것 뿐이고, 정작 쿳타라코는 나무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물론 호수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위치도 있기는 했지만 너무 위험해서 가지 않기로 했다.

오유누마
쿳타라라는 곰이 물을 마셨다는 호수. 동심원의 칼데라 호수이다.
그런데.. 전망대를 설치해 놓은 곳 조차 국립공원 안이라 나무를 잘라놓지 않으니 시야가 이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후라노 비에이. 그리고 다이세츠산(大雪山)의 아사히다케(旭岳)
원래는 6월 정도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정해진 일정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노보리베츠에서 대략 3시간을 운전해서 후라노 지역을 갔고,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평야와 구릉이 잔뜩 있었다. 아직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꽃밭은 꽃이 피지 않아서 녹색으로 가득했다.

Shot with DXO ONE Camera
Shot with DXO ONE Camera

마지막 사진은 아오이이케(青い池)라고 부르는 연못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멀쩡히 흐르는 물에 둑을 만들어, 물이 고이다 보니 썩어서 저렇게 푸는색이 되었다고 한다. ㅡㅡ; 뭐 사진에서는 그렇게 파랗게 보이지 않는데 계절에 따라 색이 짙어졌다 옅어졌다 하는게 특징이라고 한다.

Shot with DXO ONE Camera

셋째날 아침에 다이세츠산(대설산)에 올랐다. 2,200m가 넘는 산이라고 하며 활화산이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도착했을때도 봉우리 근처에서 김이 다섯 줄기 정도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아사히다케(봉우리 이름) 주위에 눈이 녹아 작은 연못처럼 된 것인데, 사진 위쪽에 까만게 사람이다. 사진이라도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함이라는게 있더라.. 그리고 내 키만큼 쌓인 눈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지도 깨달았다. 등산용 안전봉이 주위에 박혀 있었는데, 잘 보니 눈이 다 녹았을 때 박아놓은 안전봉은 머리 끝만 보이는 상태였고, 그 위의 눈에 안전봉을 추가로 박아 놓은 것이었다. 결국 좋다고 내가 걸어다니던 모든 땅이 전부 눈덩이었다는 사실.

오타루(小樽)시

다시… 3시간 좀 넘게 운전을 해서 삿포로의 베드타운인 오타루에 도착했다.
오타루는 그냥 작은 도시였고, 운하와 르 타오(Le TAO),그리고 로이스 초콜릿(Royce)같은 매장이 있었다. 그것 말고는 오르골 매장과 기타이치 유리공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딱 가로 300m x 세로 1km정도의 블럭 안에 볼만한 것들이 전부 들어 있었다.
도시는 뭐… 다 똑같으니 사진은 그다지 찍지 않았다.

운전을 정말 많이 했다.
홋카이도는 세계에서 21번째로 큰 섬이고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3/4정도 된다고 한다. 첫 날에 자동차를 렌트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운전하고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론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도시는 도시일 뿐이라 흥미를 잃은 상태이고, 먹거리는 아내와 딸아이가 워낙 음식을 가리는 편이라 뭘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결국 경치,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누 일족의 생활상을 담아놓은 박물관 같은 곳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건 하지를 못했다.
과거에 워낙 탄압이 심해서 500만 홋카이도 주민 중에 50,000에서 20,000만이라는 이상한 통계밖에 나오지 않는 아이누들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너무 큰 바램이었나 보다.
뭐 다음에 가게되면 그때는 박물관이라도 가야지.

다른거 다 떠나서… 조용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늦봄의 홋카이도를 추천하고 싶다.
하와이랑은 또 다른 느낌의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 꼭 말하고 싶은 것은, 해산물이나 음식이 맛있는데 대신 무지하게 짜다.
짜고 짜서 너무 힘들었다. 나도 싱겁게 먹는 편은 아닌데 모든 음식이 짰다.
만약 나처럼 호텔 조식/석식을 먹는다면 꼭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원래 오늘 수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투석기가 돌아가며 조금 안정이 되어서 ‘아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수술을 준비했다. 누가 뭐래도 화상은 상처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생존기회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어제내내 수술 준비를 했고, 모자란 혈액은 수혈도 하고 약물도 투여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저녁에 퇴근하는데 인턴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들이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알았지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전산에 들어가서 수술 스케쥴을 지우고 고가의 진통제를 처방에서 제외시킨 후 몰핀을 처방했다.

의료법과 각종 판례에 따라, 일단 시작한 치료를 중단할 방법은 없다.
현행 치료를 중단하면 내게 살인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가 아닌 바에는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싶더라도 향후 24시간 내에 사망가능성이 극히 높지 않으면 연명치료조차 거절할 수 없다. 법이란 것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해서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자는 CRRT 덕분에 세 종류나 사용하던 승압제(강제로 혈압을 올리고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약)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이고 열도 나지 않고 폐도 상태가 좋아졌다.
냉정하게 보아서 이 상태면 현재 치료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리고 세균이 다시 몸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사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아주 애매한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난 이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고,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다. 그냥 이대로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질환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화상에서는 흔하다.
대체 왜!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돈은 생명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따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 세상을 덜 살아도 한참 덜 살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돈을 벌어 돈을 쓰고 살고 있다. 먹는 것도 돈이고, 입는 것도 돈이고, 수도, 가스, 주거 그 어느것 하나 돈이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모든 의료행위 역시 돈이 든다.
물론 정부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당신들이 보장해 준다는 그 의료보험에는 실제 화상치료에 필요한 물품의 30% 정도만 보장을 해주고 있다. 다시말해 나머지 70%는 온전히 본인부담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화상환자에게도 암환자와 동일하게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해주고 있지만 이 5%는 의료보험공단에서 인정하고 있는 급여항목만 해당이 된다. 근데… 시간이 흐르며 정말 다양한 치료재료가 등장했고 공단은 진짜 중증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재료 중 어떤 것도 급여화 시켜주지 않고 있다.

보통… 화상범위가 70%를 넘어가면 총 본인부담금이 2억 정도 나온다.
2억. 현물도 부동산도 아닌 온전한 ‘현금’으로 2억이 필요하다. 은행잔고를 열어보라.
과연 우리 중에 몇 명이나 현금 2억이 예금잔고로 있을까.
그래도 산업재해라든가 실비보험, 또는 개인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어느정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서 치료의 여지가 있다. 근데… 나처럼 민간의료보험 하나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2억을 내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 돈을 마련해서 치료비를 낼 의향이 있는가?

중증화상환자를 볼 때 항상 두번째 면담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냉정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픈 사람도 살아야 겠지만… 남은 사람도 살아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보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치료를 포기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평생동안 같이 지내왔던 가족이 아프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돈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치료만 했지. 그러다.. 어느 환자를 봤다. 남편이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아내가 열심히 치료비를 마련해서 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퇴원할 때가 되어서 이야기를 들으니 딱 하나 있던 전세금을 빼서 치료비를 대었다고 했다.
…. 그 환자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남편은 낫기는 했지만 예전같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게 되었고 집도 사라졌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본에 갈 예정에 있고, 오늘이 환자 치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난 아주 심한 두 명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단 하나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분들에게 어떤 비난도 할 생각이 없다.
오늘, 보호자분들을 만나서 말하겠지만 환자를 위해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그냥…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뿐이고,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보듬어 주려고 한다. 앞으로 이 사람들은 평생 가슴에 이 일을 묻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냥.. 그런거다.

Just Do It

2019년 5월 19일 07:49
환자분 한 명이 사망하셨다. ARDS가 간신히 풀려가는 과정에 패혈성 쇼크(세균이 신체에 유입되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가 겹쳐 버렸다. 밤새 4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했고 결국 이른 아침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평소와 동일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심폐소생술 초기부터 아예 심장이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환자는 떠났다.

중증 화상을 보는 입장에선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힘들었다.
이 환자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공부를 하러 온 교환학생이었다.

의사를 하며 혼자 갖게 된 불문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외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싸우다 칼에 맞아서 왔고, 어떤 사람은 홧김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은 헤치려고 하다가 자기가 다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재판관이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일이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내 일은 아니다. 괜히 그런 정보를 알아 봐야 선입견만 생기는게 사람이라 더욱 조심하고 어쩔때는 일부러 모른척 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취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태에 빠졌는데, 그 나머지 한명조차 시신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하는 말이지만, 본국에서 여기까지 달려 온 환자의 아버지와 형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 역시 정말 이 환자를 살아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

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째서 사망했는지 계속 고민했고 살아남았던 과거의 다른 환자들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계속 생각했다.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생각. 그걸 하루 종일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과거에 얽매여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돌아가신 환자분 보다 조금 더 먼저 병원에 온, 더 넓은 범위의 환자분이 내 환자로 누워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 역시 상태가 매우 안좋아서, 어제부터 응급 투석을 시작했다. 지속적 신대체 요법이라고, 사람만한 크기의 기계가 24시간 내내 천천히 환자의 몸에서 피를 뽑아 정화하고 다시 넣어주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른다. 오늘 아침 피검사는 이 환자분 역시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줬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폐 기능도 좋아지고 신장수치도 떨어졌지만 간 수치가 급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흔히 말하는 다발성 장기부전. 전신상태가 악화되며 혈류가 덜 흐르면서 신체의 주요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양상이 검사상의 결과에서 보였다.
어쩌면… 더 상태가 심각한 환자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 보다 조금 덜 신경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제 이 분 밖에 남은 환자가 없고, 어떻게든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살려낼 힘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1초에 한 명이 태어나고 있고, 3초에 한 명이 사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조용한 토요일

토요일 당직이라 병원에 있다.

대충 새벽 다섯 시 정도에 일어나 병원에 나왔는데 원래 이 시간에 근무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어제 자정까지 환자 상태가 안좋아서 계속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아침되어 바로 튀어 나온 것이다. 새벽 6시 정도에 도착해서 환자 피검사 결과 보고 한참 고민한 후 이것 저것 처방을 넣었다.
원래는 너무 일찍 일어났으니 대충 일 끝나면 자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니 잠도 못 자고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환자가 안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이 안좋다’.
역시 범위가 넓어서 그런가 몸 상태가 들쭉날쭉 하고 어제부터는 ARDS(급성호흡곤란 증후군 :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폐 자체가 부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잘 안되는 것)이 발생해 두 환자 다 경계선에 걸쳐져 있다. 이유야 뭐 길게 볼 것 없이 화상과 그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한 명은 다음주 월요일까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2주 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개인 사정으로 목요일~일요일까지 한국에 없고. 이미 확정된 일이라 바꿀 수도 없고 여러모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다.

한 명은 외국인이라… 그리고 나이가 젊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다. 다치고 이틀인가 삼일만에 온 것이니까 이야기 듣고 바로 비행기표 구해서 급하게 비자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환자는 의식도 없고 (완전히 재워놨다) 얼마나 답답할 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뭐.. 다른 한 명도 보통의 사정으로 다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많이 된다. 단지… 다치게 된 경위가 너무 기구해서 여기다 쓸 수 없어 그렇지.

아무튼 오전 내내 혼자 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무신론자라 어디 빌 데도 없지만 그냥 혼자 중얼중얼 거렸다. ‘환자 좋아지면 좋겠다’ ‘나아지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진짜 어디 게임에나 나오는 마법 포션같은게 있으면 얼른 사서 벌컥벌컥 먹이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 짜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고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발 이번 주말 잘 버티고 수술 받을 수 있게 되고, 내가 외국 다녀온 다음에도 멀쩡하게 살아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