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으로 사는 인생

가끔 한 생각이지만 요즘은 좀 더 깊게 하게 되었다

최근에 몇 가지 기사가 나왔다. 과학자들이 인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떤 사람들이 성공하는지를 조사해 봤다는 기사가 시작이었다. 이 시뮬레이션은 사람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개개인의 성격과 사회경제적 수준을 세팅해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어떤 사람이 실패하는지를 연구한 것이었는데 결과가 재미있었다.
“결국, 노력은 필요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
다시말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게 아니라 그냥 “운”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좀.. 황당한 연구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 기사 이후로 가끔 이 내용을 곱씹어 보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열심히 사시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당시에 동네에서 신동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두 분은 안정적인 경제적 상태를 일구어 냈고 난 그 안에서 공부를 당연하며 받아들이며 자랐다. 비록 어렸을때는 공부를 못하면 혼나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그랬지만, 어쨌든 부모가 준 머리가 있으니 공부를 해낼 수 있었다.
IMF가 터져서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부모님들은 꾸준히 내 학비를 대 주셨고 그래서 의대를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지인은 양친이 모두 10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친척집에 전전하고 고아원에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고, 일을 하면서 동시에 대학교는 학자금 대출로 다녀 간신히 제대로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드디어 수많은 대출을 다 갚고 대출금이 제로(0)가 되었다고 했다. 그 지인은 현재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살고 있고 아직 혼자 살고 있다.

또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은 가정이 매우 불우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툭하면 딸을 때렸고, 한번은 친척이 성추행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가정에서 가출을 여러차례 했고, 결국 이모 집에서 얹혀 살며 대학까지 졸업했다. 이 친구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고 지금은 대기업의 의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난 내가 열심히 해서 의대를 나와 지금의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부모님이 받쳐줘서 그렇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지인들의 삶을 들으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첫째로 난 부모님에게 좋은 머리를 받고 태어났다. 남들보다 높은 암기능력과 집중력이 있었고, 이걸 학교다니며 잘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누가 뭐래도 사회 중산층으로서 살았고 공부 이외의 것으로 부당하게 날 대우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또한 대학교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학비를 제공해 줬고 지금도 가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금전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도움을 주시고 있다.
난, 단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춘기를 보내며 떨어진 성적을 고등학교 초기에 하루 두 시간씩 자며 매꿨고, 고등학교 3년동안 죽어라 공부했다. 의대에 와서도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할수 있는 한 열심히 했고 전공의 기간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노력은 30%, 나머지 40%는 부모님 잘 만나서, 그리고 나머지 30%는 단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전공의 이후의 상황을 보더라도 내가 전문의가 되는 시점에 우리병원 외과의 선생님 한 분이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고 그래서 그 자리로 내가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화상을 보던 선생님이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며 내가 화상을 맡게 된 것이고. 이건 정말 운이었다.

아무튼 노력은 했지만 내 삶에 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는 이상한 부모 밑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난 그런것 없이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그리고 시기가 맞아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정말 운이 좋았다.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 더 겸손해 짐을 느꼈다. 그리고… 요즘 한창 난리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저 사람도 운이 좋았구나. 물론 부모님들이 못하게 해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했고, 자기가 엄청나게 잘하는 문과를 가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환경의 도움을 받아 저 자리에 갔구나.. 누군가는 그런 환경을 받지 못해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데 말야.”

나도 잘은 모르겠다. 당시 입시는 돈이 있는 집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입시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저… 나와는 달리 ‘운’이 없었던 분들을 보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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