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원래 오늘 수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투석기가 돌아가며 조금 안정이 되어서 ‘아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수술을 준비했다. 누가 뭐래도 화상은 상처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생존기회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어제내내 수술 준비를 했고, 모자란 혈액은 수혈도 하고 약물도 투여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저녁에 퇴근하는데 인턴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들이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알았지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전산에 들어가서 수술 스케쥴을 지우고 고가의 진통제를 처방에서 제외시킨 후 몰핀을 처방했다.

의료법과 각종 판례에 따라, 일단 시작한 치료를 중단할 방법은 없다.
현행 치료를 중단하면 내게 살인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가 아닌 바에는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싶더라도 향후 24시간 내에 사망가능성이 극히 높지 않으면 연명치료조차 거절할 수 없다. 법이란 것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해서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자는 CRRT 덕분에 세 종류나 사용하던 승압제(강제로 혈압을 올리고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약)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이고 열도 나지 않고 폐도 상태가 좋아졌다.
냉정하게 보아서 이 상태면 현재 치료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리고 세균이 다시 몸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사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아주 애매한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난 이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고,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다. 그냥 이대로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질환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화상에서는 흔하다.
대체 왜!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돈은 생명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따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 세상을 덜 살아도 한참 덜 살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돈을 벌어 돈을 쓰고 살고 있다. 먹는 것도 돈이고, 입는 것도 돈이고, 수도, 가스, 주거 그 어느것 하나 돈이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모든 의료행위 역시 돈이 든다.
물론 정부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당신들이 보장해 준다는 그 의료보험에는 실제 화상치료에 필요한 물품의 30% 정도만 보장을 해주고 있다. 다시말해 나머지 70%는 온전히 본인부담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화상환자에게도 암환자와 동일하게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해주고 있지만 이 5%는 의료보험공단에서 인정하고 있는 급여항목만 해당이 된다. 근데… 시간이 흐르며 정말 다양한 치료재료가 등장했고 공단은 진짜 중증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재료 중 어떤 것도 급여화 시켜주지 않고 있다.

보통… 화상범위가 70%를 넘어가면 총 본인부담금이 2억 정도 나온다.
2억. 현물도 부동산도 아닌 온전한 ‘현금’으로 2억이 필요하다. 은행잔고를 열어보라.
과연 우리 중에 몇 명이나 현금 2억이 예금잔고로 있을까.
그래도 산업재해라든가 실비보험, 또는 개인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어느정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서 치료의 여지가 있다. 근데… 나처럼 민간의료보험 하나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2억을 내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 돈을 마련해서 치료비를 낼 의향이 있는가?

중증화상환자를 볼 때 항상 두번째 면담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냉정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픈 사람도 살아야 겠지만… 남은 사람도 살아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보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치료를 포기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평생동안 같이 지내왔던 가족이 아프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돈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치료만 했지. 그러다.. 어느 환자를 봤다. 남편이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아내가 열심히 치료비를 마련해서 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퇴원할 때가 되어서 이야기를 들으니 딱 하나 있던 전세금을 빼서 치료비를 대었다고 했다.
…. 그 환자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남편은 낫기는 했지만 예전같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게 되었고 집도 사라졌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본에 갈 예정에 있고, 오늘이 환자 치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난 아주 심한 두 명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단 하나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분들에게 어떤 비난도 할 생각이 없다.
오늘, 보호자분들을 만나서 말하겠지만 환자를 위해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그냥…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뿐이고,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보듬어 주려고 한다. 앞으로 이 사람들은 평생 가슴에 이 일을 묻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냥..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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