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힘들겠어

화상 환자가 왔다

평소보다 많이 심한 환자가 왔다. 전신 80%의 화상에 연기까지 많이 마셔서 몸 상태가 안좋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고, 이것저것 해독치료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어제는 오후에 응급수술을 들어가서 죽은 살을 깎아냈다.
보통 흡입손상이라고 하는, 화재로 인한 연기형태의 독성물질 흡입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사망율이 50%에 이르는 독한 질환이다. 거기에 체표면적 80%의 화상을 더하면 보통은 사망율이 ≅ 100%라고 설명한다. 이 환자도 도착 당시에 이미 청산가스 중독증상이 심해 혈압이 거의 안잡히다시피 했고 일산화탄소 중독도 심했다. 거기다 수술들어가기 직전 확인한 바로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드셨다고 하고.

솔직히 말해 살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살고 죽고는 내 뜻이 아니니까. 그저 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환자에게 살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경우 사망율을 100%로 설명해야 하는 환자를 난 보호자에게 20%정도의 생존율로 설명했다. 아무래도 보호자분들이 포기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 바램이 뒤섞인 설명이었겠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찜찜한 기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환자 때문이었을까? 응급실에 도착한 당일부터 3일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딱히 환자 상태를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다 깨다를 세네번씩 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트레스겠지? 근데 마음 편하게 먹고 있으면 사망하는 건 불보듯 뻔 한 일이라 그럴 수도 없고. 자주 느끼는 거지만 이놈의 화상 분야는 제 살 깎아먹어 환자 치료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특히나 인력도 모자라고 자원도 제한된 환경이라 의료진을 소모하는게 더 심한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야…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열심히 하면 되기는 하지만 환자 보호자는 어떨지 모르겠다. 총 치료비가 2억은 넘을것 같다고 어제 말씀드렸는데 ‘그건 나중에 살아나면 그렇다는 것 아니냐’며 무시하려고 하셨다. 으음… 그 돈의 60%가 초기 2~3달 내에 다 들어가는데요? ㅠㅠ 당장 금요일 정도 수술에 배양조직 채취를 해야 하고 그것만 해도 비보험으로 200만원이나 한다. 거기다 그걸 내가 원하는 사이즈 정도로 배양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데다, 중간에 환자가 사망하셔도 전체 약가의 5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손 놓고 있냐고…? 아아… 정부.
정부는 산정특례라고 진료비 할인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해주고 있지. 뭐 이것만 놓고 보면 참 좋은 제도인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는 약과 치료재료가 극히 적어서 말만 할인이지 사실은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
말 그래도 ‘다치면 네 손해’지. 끝임없이 세상의 의료기술은 변화하고 있는데 정부는 한 20~30년전 치료기술에 딱 멈춰서 이후에 나온 모든 치료재료를 비보험으로 처리해버리고 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오늘도… 수술 들어가야 한다. 다치고 만 3일 이내가 가장 출혈이 적은 시기라 환자 몸 상태가 안정되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데다, 화상이라는 병의 특징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 특징이라 초반에 선수를 치지 않으면 이후에는 죽을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오늘은… 수술 들어가기 전에 원무과에도 연락해야 한다. 환자 비용이 니들이 생각하는 것의 20배 정도 나올 거라는 정보도 제공하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치료재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 가뜩이나 술 많이 드셔서 출혈이 잘 안잡히는 환자인데,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
그래도 살기만 해주면 좋겠다. 절뚝거려도, 걸어서 나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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