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수술은 없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냥 자주 하는 수술이었다. 아마 100번도 넘게 들어갔을 탈장 수술이었는데 수술중에 피가 났다. 피야 수술하면 당연히 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흔히 탈장수술에서  Triangle of Doom이라는 부분이 있다. 다리쪽으로 내려가는 굵은 신경과 혈관덩이가 지나가는 부위인데 오늘 수술은 바로 이 부위에서 났다.

외과의사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정맥 출혈이다. 보통사람들이야 동맥출혈은 피가 쭈욱 쭈욱 뿜어져 나오니 더 위험한 것 아닌가 생각하지만, 외과의사들 입장에선 출혈부위가 정확히 보이지 않으면서 피가 콸콸나는 정맥출혈을 더 무서워 한다. 흔히들 “출혈부위 찾으려고 석션(피나 물 종류 흡입기) 몇 번 하면 환자 죽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맥출혈이다.
Triangle of Doom 지역은 사람 손가락 만한 정맥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거대한 정맥의 가지 하나가 출혈이 있었다.

정말 다행이도 전기소작기로 지혈이 되었고 손가락 만한 녀석은 손상이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수십만원짜리 지혈제를 턱! 하고 붙이고 수술을 끝냈다.
그래… 차분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 머리가 하예지고 등골이 오싹했지만 집도의가 당황하면 같이 수술하는 모든 의료진이 당황하니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며 처리를 했다. 소독 간호사로 쌩 신규 간호사가 들어와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에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꾸욱 참고 기다려줬다.

수술이라는게,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큰일 없이 끝낼 수 있는 것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술에는 합병증 발생율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합병증 발생율이라는 통계는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수술을 더 잘하게 되면 피할 수 있지 않냐고? 아아… 모든 수술에는 크게 두 가지 변수가 있는데 첫째는 의료진, 둘째는 환자다. 의료진의 술기야 열심히 익히면 나아지지만 환자라는 변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당장 겉으로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경우도 있고, 수술을 들어갔더니 외계인에 버금가는 기이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모든 수술 통계는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일반적인 합병증의 비율을 알려주는 것이라 우리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논문에서 Triangle of Doom의 주요혈관 손상율을 0.2~0.3%로 잡고 있고, 보통 이게 손상되면 환자는 하늘나라 간다. 그리고 난 그 0.2~0.3%에 다가갔거나 다가갈 뻔 했고 말이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탈장 수술을 할만큼 했나 보다. 통계적 합병증 발생율에 점점 다가가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수명이 몇 년 줄어듦을 느꼈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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