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길

이번주는 계속 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월요일 수술에 너무 많은 체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내 고민의 40%를 차지하고 있던 환자의 마지막 수술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고, 초기 세 번의 수술이 세균감염으로 망쳐져서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세균 감염만 잘 조절되었으면 벌써 걸어 퇴원했을 환자이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고.

뭐… 다시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환자였다고 생각한다.
당뇨만 달랑 있는 환자가 아니라 각종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과체중 환자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중증화상 환자는 기초대사량의 150~200%정도 열량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 환자는 혈당 조절이 엉망이라 이대로 주면 혈당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제대로 열량 공급을 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과체중이다 보니 식사를 조금만 많이 공급하면 배가 남산만해져 (스트레스 상황에선 장운동이 떨어지는 데다 당뇨에 의한 합병증으로 위장의 내용물 배출이 지연됨. 다시말해 소화가 잘 안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셋째론 당뇨로 인한 만성신부전이 진행중에 있어서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계속 이뇨제를 써야 했고, 특히나 대량의 수액이 들어가는 화상이다 보니 툭하면 전신부종에 폐부종이 와서 호흡곤란이 발생했다. 더해서 목이 짧고 굵고 입이 작으며 과체중이다 보니 첫 수술 들어갔을때 기도삽관이 제대로 안되어서 저승 절반정도 다녀왔다는…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이었다. 수술하고 나면 몸에 물이 차고 목에도 물이 차서 호흡곤란으로 응급 기도삽관 하고 심정지도 발생하고 정말… ㅠㅠ

환자를 치료하는게 내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환자였다. 뭐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환자 보호자는 진료비 많이 나와서 고통 받고, 환자는 아프니까 고통받고 나는 환자가 내 맘만큼 치료가 되지 않아서 고통 받았다. 그래도… 진짜 그래도 무사히 살려서 집에 보낼 수 있을것 같다는 확신이 드니 마음의 짐이 다소 덜어짐을 느끼고 있다.

환자는 나아가지만 조금 후회스러운 것도 몇 있었다.
우선 아무리 과체중이고 당뇨가 심해도 초반에 더 공격적인 영양 공급을 했다면 세균감염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 더 신장내과에 내 의견을 피력해서 투석을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마지막으로… 분명히 3:1 메쉬 플레이트 (이식할 피부에 구멍을 뚫어 늘려주는 장치. 3:1이면 가로로 3배 늘어남)를 사용했는데 6:1이 튀어나온 빌어먹을 회사 놈들을 조져주지 않은 것도 아쉽고. 그 놈들 덕분에 가뜩이나 상태 안좋을때 한 수술이 완전 망해 버렸다. 항의를 해도 고작 메쉬 플레이트 교환이나 해주겠다니… 정말.

아무튼 지금 돌아보면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자료 찾아보며 지냈던 내 삶과, 여러명의 환자를 잃으며 체득한 지식이 이 환자를 살리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시체의 길을 걸으며 얻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잃어가며 성장하는 거니까.

오늘은 3월 20일이다. 적어 놓았던 글이 사라져서 이제는 정확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년전 난 이 날 환자 한명을 잃으며 내 지식의 짧음과 실수에 대해 한탄했고 내 나름의 기념일로 정해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래… 또 힘 내서 망자의 길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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