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것

역시 남 신경 써줘봐야 좋을게 하나도 없다

지난번에 우리병원 행정직들을 위해 사내게시판에 글을 하나 썼다가 다음날 아침에 지웠다.
뭐 지운 이유는 전체 내용중에 찝찝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어떤 정치인이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이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저도 요즘 저녁이 있는 삶을 조금 누리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밥도 해주고 딸아이 공부도 가르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분들 중 일부는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 전공의때 만큼은 안되더라도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토요일에도 나와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제대로 수당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하고요.

내용중 일부인데, 요즘 우리과가 당직을 안 서면서 내가 누리게 된 좋은 점과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혼자 생각이었지만 분명히 삐뚤어지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내용은 보지 않고 이 부분만 쳐다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6시간만에 지운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어제 기획실 팀장을 우연히 만났는데 바로 이 말을 하더라.

“외과 이제 당직 서게 되면 집에 잘 못가실텐데 어떡해요? ㅋ”

시발. 역시나 이것만 볼 줄 알았다. 순간 짜증이 확 올랐지만 길게 얘기해봐야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언제 다시 서게 될 지도 모르는데요 뭐” 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전에 내 친한 형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느낄때 노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집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툭하면 돈도 못 받는 야근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렸지만 이 문제는 결국 자신들이 해결할 문제라는 생각. 좋은 뜻으로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봤지만 정작 본인들이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지원사격조차 허공에 총쏘기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 해서 돈을 받으면, 그게 무슨 일이든 간에 당신은 노동자’라고. 그렇게 본다면 목수도 노동자고 공장근로자도 노동자고 우리도 노동자인 것이다. 결국 노동자라는 말은 일부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모든 이들을 뜻하는 말인데, 유독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노동자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 병원 행정직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자신들은 정규직이니까 나중에 병원의 행정부분 ‘관리’를 할 사람들이고 이렇게 봉급도 못 받고 열심히 일해도 야근수당 요구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거… 윗 사람들이 아랫사람들 등쳐먹으려고 하는 개소리인거 왜 모를까?
나 역시 그렇게 10년을 보내봤다. 인턴, 전공의 5년동안 아무 불평불만 하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해봤고, 최장 주 126시간까지 근무해본 적도 있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1주일 3일의 당직과 주간근무 40시간을 꾹꾹 눌러 채우며 일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얻은 것은 불면증과 우울증. 지금 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은 아픈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그만큼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걸 꼭 과도한 노동과 무임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건… 윗 사람이 아랫사람 벗겨 먹는 일일 뿐이다.

아무튼 ‘역시 저것들은 지들이 사장인 줄 알아’ 라는 생각과 ‘남 신경 써줘야 하나도 얻을 것 없다’는 생각만 마음에 남았다.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좀 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도 정작 글을 올리니 바로 입장바꿔 비아냥 거리는 것을 보자니 아직 더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여성 근로자가 50% 이상 되는 병원에서 남들 다 있는 어린이집 하나 없는 것도 이해가 되었고, 다른 병원보다 20~30% 임금이 적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본인들이 문제가 있다고 깨달고 그걸 바꾸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미친 경영자가 알아서 챙겨줄까. 매년 임금 협상때 노동가요나 크게 틀어놓는 일 밖에 못하는 것들이 제대로 된 임금협상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노동운동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완전 우익인 내가 봐도 저들은 벗겨먹기 쉬운 존재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말이다.
항상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왜 진상이 성공하고 잘나가는지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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