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는구나…

어제 전기화상 환자 수술을 했다

특고압 설비를 수리하다 다친 분이었는데 심하게 다치셨다. 병원에 오자마자 근막절개를 했고, 수술소견상 절단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분은 그래도 최대한 절단하지 않는 쪽으로 치료해 달라고 했고, 어제 괴사조직들을 제거하기 위해 가피절제술을 하러 들어갔다.
엉망이었다. 이미 근육과 말단부위는 괴사가 진행중에 있었고 죽은 살을 깎아내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고 세포액과 혈청만 흘러나왔다. 이 조직은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이 끝나고 보호자분들께 사진을 보여드리며 살릴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보호자분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서둘러 짐을 싸고 퇴근한지 한 10분 되었을까?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와서 보호자분이 급히 면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S모 병원으로의 전원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여기서 살릴 수 없다면 더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오늘 수술직후라 전원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아침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조금 있으면 면담을 해야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설명을 충분히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부드럽게 말을 해서 그런 것인지 보호자분들은 이미 죽어버린 사지를 어떻게 잘 치료하면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벌써 이런 식으로 수차례 전원을 보냈다. 뭐 받는 병원에서야 땡큐지. 적절한 처치를 했지만 살릴 수 없다는 평가를 해줬으니 받아서 보고 못 살린다고 해도 부담이 될 것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산업재해 환자는 심한말로 금싸라기 같은 존재라 일반 의료보험에 비해 보험되는 범위도 훨씬 넓으니 말이다. 난 그냥,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많은 전기화상 환자를 봤고 이제 다른건 몰라도 전기화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병원의 이름을 보고 떠나니 말이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전기화상은 내가 속한 병원이 한국에서 제일 잘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기화상을 본지 아주 오래되기도 했고, 그만큼 경험이 쌓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은 계속 전기화상을 보고 있으니 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무 투자도 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10년 이상이 흐르며 시설투자와 인력투자를 간과한 결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기화상 하면 우리병원이던 사람들의 생각도 화상하면 S병원이라고 각인이 되었고, 그 동안 꾸준히 환자를 보아왔던 의사들은 다 떠나고 없게 되었다. 이젠 나 혼자 남았다. 어쩌겠는가. 그냥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병원의 운명인가 싶다. 나역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 병원에서 사비를 들여가며 연구를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고 병원은 신포괄 수가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중증화상을 볼 때마다 적자폭이 커지는 구조가 되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병원정책이라는 것은 나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화상환자를 제대로 많이 보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것도 안될 것이 뻔하니 그냥 포기하고 살기로 했다. 그래도 봉급은 나오니까 봉급 나올때까지만 열심히 일해주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 다른 병원이나 알아보든지 아니면 요즘 인기가 있는 호스피탈리스트를 알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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