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것과 동물을 키우는 것

내가 냉정한 동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성인이 되면 그 이후의 삶은 내가 관여할 바도, 관여를 해서도 안되는 거지만 미성년자일때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본다. 아이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먹고 입고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게 부모이고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것으로 규정된 것들을 못하게 하거나 옳은 방법으로 규정된 것을 하도록 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사회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부. 과거의 세계는 사람이 성인으로 거듭나 경제활동을 할 때까지 그다지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거주지역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만 충분히 숙지시키면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아주 기본적인것도 한참을 공부해야 할 만큼 공부할 것이 많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담아두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도 늘었다. 그만큼 공부는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는데 문제는 이놈의 공부가 정말 재미없고 하기 싫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감정적 관계라 아이의 감정이 사방팔방에서 분출된다. 특히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날 워낙 무서워 하기 때문에 – 집에서 잔소리하고 혼내는 것이 나밖에 없다 – 그리고 아이 엄마와 나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아이 엄마에게 교육을 맡기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아이를 보니 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나눗셈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구구단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결국 며칠전부터 구구단을 매일 시험보고 있다.

아마 우리 아이도 나이가 들고 날 생각할 때면 ‘무섭고, 혼내고, 공부 지독하게 시키던 아버지’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공부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라 ‘공부는 절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도 부모로서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 자체에 혐오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원래 공부라는 것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인데 그걸 재미없으니 안해도 된다거나 피해갈 수 있는 것이라 느끼게 하면 바보 되는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특히나 싫어하는 과목에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벽. 그 벽을 깨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점도 말이다.
어제 아이는 구구단 외우는 게 싫어서 저녁 9시에 처가집에 갔다가 밤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아이 취침시간이 11시 전이었으니, 제 딴에는 ‘오자마자 잠을 자야 하니 구구단 안외워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겠지. 미안, 아이야. 아빠는 그렇게 느슨한 사람이 아니란다. ㅠㅠ
결국 또 펑펑울고 구구단 다 외우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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