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은 힘들어

화상센터장을 제안받았다

사실 지난주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 우리 병원이 마지막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거기 화상센터장으로서 참가해서 리모델링 사업을 끝마치고 화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리모델링도 끝내고 다시 화상을 보는 병원으로서 대외적으로 기지개를 켜자는 뜻인 것 같았다.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었고, 어제 하기 싫다는 내용의 편지를 제안한 사람에게 보냈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을 상대하고 설득하고 지시하는 것이 싫을 따름이었고, 그런 과정중에 내가 받을 스트레스가 무서운 것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직함을 받아봐야 제대로된 추가임금을 받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 신경쓸 일만 늘어나고 고생만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좀 더 일찍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환자가 빠져나가는 이 상황을 미리 확인해서 대책도 세워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병원은 그러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아마도 우리병원의 유니크한 특징을 찾다가 도저히 찾을 것이 없으니 다시 화상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 여느병원과 별다른 차별점도 없는 종합병원에서 어떻게든지 차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지만, 이미 환자는 다 떠난 상태이고 아무도 우리 병원이 화상을 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를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거쳐간 두 세명의 원장중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4년 동안이나 화상센터를 짓겠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전혀 만들어진 것이 없을까. 말 그대로 말만 해놓고 손도 대지 않은 것이겠지. 화상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갑갑하고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화상센터장이 되는 것이 찝찝한 부분은, 내가 사람을 다루고 사람과 협상을 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뛰어난 대장의 밑에서 일할때는 최고의 직원으로서 업무에 충실할 수 있지만 대장이 되어 버리면 그런 장점은 싹 다 사라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각기 자신에게 맞는 그릇과 옷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걸까. 단지 그걸 말씀드렸을 따름이다.
IT에서 일하는 친한 형은 ‘그래도 결국에는 네가 하게 될 거야’라고 했다. 우리 병원에서 유일하게 외과의사로서 화상을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뭐…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거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지 피해보고 싶으니 노력은 하고 있다 생각한다. 가능하면 같은 봉급에서 일은 적게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이고, 스트레스는 최소화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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