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하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어제 병원의 전체 전문의 회의가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끝나기 전에 몇 가지 알림사항을 보직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이야기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병원 심폐소생술위원회에서 회의를 한 결과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는데 요지는 이렇다.

현재 코드블루(심정지 상황)가 발생하면 응급의학과를 위시한 의료진이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하다보니 내과계는 큰 문제가 없는데 외과계는 담당 주치의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대해 논의하였고 아래의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심폐소생술 상황이 발생하면 담당 주치의는 꼭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이에대한 조치에 대해 생각하겠다.”

내용이야 뭐 의사로서 도리를 지켜라 같은 것이었지만 한 전문의 선생님이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다. “그래서 돈은요..? 호출비는 줍니까?” 이에대해 심폐소생술 위원회 위원장이 그랬다. “심폐소생술 상황에 대한 논의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좀 그렇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항은 우리 위원회의 범위를 넘어선다.”

뭐 당장 이야기만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았지만… 나도 조금 할 말이 생겼고, 그렇지만 퇴근시간이 이미 한참 지난 관계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끝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며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다음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 심정지 상황에 주치의가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도의적인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미 퇴근을 한 사람도 나와서 보라고 하는것은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에따른 보상이 필요한 문제인데 심폐소생술 위원회는 그걸 싹 무시하고 ‘자신들의 일이 아니므로 모른다’고 답을 했다. 현재 정규직으로 되어있는 주치의 선생님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때 병원에 오면 다만 몇 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계약직 의사들은 먼 길을 달려 병원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십원짜리 한 푼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는 지방에 있어 몇 시간이 걸려 간신히 도착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무조건 담당환자의 심정지가 발생하면 병원에 나오라는 것은 의사의 도덕성을 미끼 삼아 행하는 병원의 횡포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의사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한 1년 정도 무급으로 직장을 다녀 보시라.

둘째, 심폐소생술 위원회가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을시 그에 따른 제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말이다. 추가노동에 따른 보상을 논할 수 없는 주체가 제재라는 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해당 주체가 보상을 논할 수 없다면 벌도 논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에대해 아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제재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월권을 한다는 뜻이거나 가짜정책을 생산한다는 뜻이 되니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권고는 할 수 있으나 제재는 할 수 없는, 권한이 없는 주체라는 말이다.

셋째, 집에 있는 의사를 담당 주치의라는 이유로 불러내야 한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을 고려해야 했는데 이에대해 아무 정책도 정하지 않은 채 이 내용을 발표했다. 이건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병원이든 회사든 어떤 정책이 인사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상과 벌에 대해 고려를 해야하고 그 모든 논의가 끝난 후 직장 책임자의 결제를 받아 발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폐소생술 위원회는 이런 문제는 모두 생략하고 이 내용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아직 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정책을 발표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행정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보면 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직원들의 혼란과 불안감만을 가중시키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지양해야 하는데 심폐소생술 위원회는 그걸 무시했다.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다. 이걸 사내게시판이든 의사들 단체 카톡방이든 어디다 올릴지 말 지는 좀 더 생각해야 겠지만 내 생각으론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담당 주치의가 나오라는 말은 내과계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가 나와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되고, 내과계는 전공의가 있는 과가 있으니 전문의가 안 나와도 된다고 한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은 생각한 적 있는지 모르겠다.
심폐소생술 위원회가 무슨 뜻으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꺼낸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발표가 아니었나 싶다. 뭐… 원장이 응급의학과에서 나왔으니 기세가 좋은 것은 이해를 하지만, 이건 좀 잘못된 것 같아 여기다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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