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원래 오늘 수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투석기가 돌아가며 조금 안정이 되어서 ‘아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수술을 준비했다. 누가 뭐래도 화상은 상처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생존기회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어제내내 수술 준비를 했고, 모자란 혈액은 수혈도 하고 약물도 투여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저녁에 퇴근하는데 인턴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들이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알았지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전산에 들어가서 수술 스케쥴을 지우고 고가의 진통제를 처방에서 제외시킨 후 몰핀을 처방했다.

의료법과 각종 판례에 따라, 일단 시작한 치료를 중단할 방법은 없다.
현행 치료를 중단하면 내게 살인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가 아닌 바에는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싶더라도 향후 24시간 내에 사망가능성이 극히 높지 않으면 연명치료조차 거절할 수 없다. 법이란 것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해서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자는 CRRT 덕분에 세 종류나 사용하던 승압제(강제로 혈압을 올리고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약)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이고 열도 나지 않고 폐도 상태가 좋아졌다.
냉정하게 보아서 이 상태면 현재 치료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리고 세균이 다시 몸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사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아주 애매한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난 이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고,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다. 그냥 이대로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질환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화상에서는 흔하다.
대체 왜!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돈은 생명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따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 세상을 덜 살아도 한참 덜 살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돈을 벌어 돈을 쓰고 살고 있다. 먹는 것도 돈이고, 입는 것도 돈이고, 수도, 가스, 주거 그 어느것 하나 돈이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모든 의료행위 역시 돈이 든다.
물론 정부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당신들이 보장해 준다는 그 의료보험에는 실제 화상치료에 필요한 물품의 30% 정도만 보장을 해주고 있다. 다시말해 나머지 70%는 온전히 본인부담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화상환자에게도 암환자와 동일하게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해주고 있지만 이 5%는 의료보험공단에서 인정하고 있는 급여항목만 해당이 된다. 근데… 시간이 흐르며 정말 다양한 치료재료가 등장했고 공단은 진짜 중증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재료 중 어떤 것도 급여화 시켜주지 않고 있다.

보통… 화상범위가 70%를 넘어가면 총 본인부담금이 2억 정도 나온다.
2억. 현물도 부동산도 아닌 온전한 ‘현금’으로 2억이 필요하다. 은행잔고를 열어보라.
과연 우리 중에 몇 명이나 현금 2억이 예금잔고로 있을까.
그래도 산업재해라든가 실비보험, 또는 개인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어느정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서 치료의 여지가 있다. 근데… 나처럼 민간의료보험 하나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2억을 내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 돈을 마련해서 치료비를 낼 의향이 있는가?

중증화상환자를 볼 때 항상 두번째 면담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냉정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픈 사람도 살아야 겠지만… 남은 사람도 살아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보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치료를 포기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평생동안 같이 지내왔던 가족이 아프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돈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치료만 했지. 그러다.. 어느 환자를 봤다. 남편이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아내가 열심히 치료비를 마련해서 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퇴원할 때가 되어서 이야기를 들으니 딱 하나 있던 전세금을 빼서 치료비를 대었다고 했다.
…. 그 환자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남편은 낫기는 했지만 예전같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게 되었고 집도 사라졌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본에 갈 예정에 있고, 오늘이 환자 치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난 아주 심한 두 명의 환자를 입원시키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단 하나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분들에게 어떤 비난도 할 생각이 없다.
오늘, 보호자분들을 만나서 말하겠지만 환자를 위해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그냥…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뿐이고,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보듬어 주려고 한다. 앞으로 이 사람들은 평생 가슴에 이 일을 묻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냥.. 그런거다.

Just Do It

2019년 5월 19일 07:49
환자분 한 명이 사망하셨다. ARDS가 간신히 풀려가는 과정에 패혈성 쇼크(세균이 신체에 유입되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가 겹쳐 버렸다. 밤새 4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했고 결국 이른 아침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평소와 동일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심폐소생술 초기부터 아예 심장이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환자는 떠났다.

중증 화상을 보는 입장에선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힘들었다.
이 환자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공부를 하러 온 교환학생이었다.

의사를 하며 혼자 갖게 된 불문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외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싸우다 칼에 맞아서 왔고, 어떤 사람은 홧김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은 헤치려고 하다가 자기가 다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재판관이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일이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내 일은 아니다. 괜히 그런 정보를 알아 봐야 선입견만 생기는게 사람이라 더욱 조심하고 어쩔때는 일부러 모른척 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취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태에 빠졌는데, 그 나머지 한명조차 시신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하는 말이지만, 본국에서 여기까지 달려 온 환자의 아버지와 형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 역시 정말 이 환자를 살아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

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째서 사망했는지 계속 고민했고 살아남았던 과거의 다른 환자들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계속 생각했다.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생각. 그걸 하루 종일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과거에 얽매여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돌아가신 환자분 보다 조금 더 먼저 병원에 온, 더 넓은 범위의 환자분이 내 환자로 누워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 역시 상태가 매우 안좋아서, 어제부터 응급 투석을 시작했다. 지속적 신대체 요법이라고, 사람만한 크기의 기계가 24시간 내내 천천히 환자의 몸에서 피를 뽑아 정화하고 다시 넣어주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른다. 오늘 아침 피검사는 이 환자분 역시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줬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폐 기능도 좋아지고 신장수치도 떨어졌지만 간 수치가 급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흔히 말하는 다발성 장기부전. 전신상태가 악화되며 혈류가 덜 흐르면서 신체의 주요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양상이 검사상의 결과에서 보였다.
어쩌면… 더 상태가 심각한 환자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 보다 조금 덜 신경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제 이 분 밖에 남은 환자가 없고, 어떻게든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살려낼 힘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1초에 한 명이 태어나고 있고, 3초에 한 명이 사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조용한 토요일

토요일 당직이라 병원에 있다.

대충 새벽 다섯 시 정도에 일어나 병원에 나왔는데 원래 이 시간에 근무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어제 자정까지 환자 상태가 안좋아서 계속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아침되어 바로 튀어 나온 것이다. 새벽 6시 정도에 도착해서 환자 피검사 결과 보고 한참 고민한 후 이것 저것 처방을 넣었다.
원래는 너무 일찍 일어났으니 대충 일 끝나면 자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니 잠도 못 자고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환자가 안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이 안좋다’.
역시 범위가 넓어서 그런가 몸 상태가 들쭉날쭉 하고 어제부터는 ARDS(급성호흡곤란 증후군 :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폐 자체가 부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잘 안되는 것)이 발생해 두 환자 다 경계선에 걸쳐져 있다. 이유야 뭐 길게 볼 것 없이 화상과 그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한 명은 다음주 월요일까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2주 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개인 사정으로 목요일~일요일까지 한국에 없고. 이미 확정된 일이라 바꿀 수도 없고 여러모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다.

한 명은 외국인이라… 그리고 나이가 젊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다. 다치고 이틀인가 삼일만에 온 것이니까 이야기 듣고 바로 비행기표 구해서 급하게 비자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환자는 의식도 없고 (완전히 재워놨다) 얼마나 답답할 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뭐.. 다른 한 명도 보통의 사정으로 다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많이 된다. 단지… 다치게 된 경위가 너무 기구해서 여기다 쓸 수 없어 그렇지.

아무튼 오전 내내 혼자 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무신론자라 어디 빌 데도 없지만 그냥 혼자 중얼중얼 거렸다. ‘환자 좋아지면 좋겠다’ ‘나아지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진짜 어디 게임에나 나오는 마법 포션같은게 있으면 얼른 사서 벌컥벌컥 먹이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 짜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고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발 이번 주말 잘 버티고 수술 받을 수 있게 되고, 내가 외국 다녀온 다음에도 멀쩡하게 살아있기를 빈다.

배수의 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전부터 고통받던 문제인데, 난 상당히 강박적인 성격이다. A라고 했으면 A가 되어야 하고, A’가 되어버리면 그걸로 스트레스 받고 고통받는 성격이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강박적이라 이런 성격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다른 얘기지만 이런 성격으로 결혼까지 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아내님에게 감사하고 있다.

환자가 둘 있다. 하나는 전신 75%의 화상이고 다른 하나는 전신 60% 정도의 화상이다. 둘 다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고 있고, 두 명의 환자 때문에 난 앉으나 서나 계속 환자 걱정을 하고 있다.
뭐 걱정이라고 해봐야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것은 아니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째서 지금 소변이 이것밖에 안 나오는지, 왜 열이 떨어지지 않는지, 왜 혈압이 안정되지 않는지, 이런 것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화상환자들은 살아 있는 것 만으로도 환자분께 감사할 노릇이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한다.

환자는 높은 수준의 진정제와 진통제로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보호자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실수하면 나는 괜찮지만 환자는 잘못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재미로 하는 장기라면 한 수 물러달라고 졸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 싸움에는 뒤가 없다. 어떻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경우이고 보통의 경우 단 한 수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가 극에 닿는 상황이 되면 도망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모른채 하고 싶어진다. 마음 한 구석에서 차라리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모든걸 포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고작 일주일 정도 흘렀지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끝임없이 흝고 지나가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쉬고 싶고, 생각하기 싫고, 도망치고 싶고. 차라리 핵전쟁이 일어나서 온 세상이 뒤집어져 버리면…
그런데… 나는 쉴 수 있고, 도망갈 수 있지만 환자는 아무데도 못 간다. 다시 말해 뒤가 없는 상황이다.

배수의 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의식이 없는 환자의 치료를 대표하고 있고, 내가 쓰러지면 환자도 쓰러진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한 배를 탔다면, 그리고 뒤가 없다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피곤하다. 그렇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옥 문턱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어젠 절반 성공하고 절반 실패했다

우선.. 상태가 매우매우 안좋은 환자가 한 분 월요일에 오셨는데, 그 분 수술이 잘 되었다는 점.
수술 들어가기 직전에 혈압이 뚝뚝 떨어지고 몸에 이산화탄소가 자꾸자꾸 쌓여서 ‘아 수술도 못 받고 돌아가시게 생겼구나’ 했는데 오히려 수술 이후에 전신상태가 좋아졌다.
이게 왜 좋은 일이냐면… 물론 환자가 좋아져서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수술 들어가기 전에 너무 상태가 안좋아서 정말 수술을 하는 게 맞을지 한참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날 당직에 따른 피로와 쉬고 싶은 욕구가 합세해 수술을 하루 미루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했다. 한… 한 시간 정도 고민한 것 같다. 다행히도 이성이 승리해서 수술을 하게 된 거구.
잘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 번의 수술로 7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술비가 환자 본인 부담금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잘 되어서 좋았고, 그리고… 내 이성과 책임감이 감정을 이겨서 좋았다. 뭐 덕분에 난 밤새 피로에 시달렸지만…ㅋ

이제 절반 실패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월요일 당직을 선 대가로 수요일 오프를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화요일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별 사진 찍으러 갔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사람도 없었고 완전히 어둠이 내리기 전에 기본적인 설치를 마쳤다.
극축정렬이라고… 천체망원경과 지구의 자전축을 정확히 맞추는 작업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걸 정말 정말 세밀하게 했다. 극축정렬을 하는 데만 거의 두 시간 반을 소모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렬을 마치고 지난번 실패했던 석호성운을 찍기 위해 시도했는데, 지난번과 똑같이 아무리 찾아도 석호성운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 수십장의 테스트 사진을 찍어보고 도저히 안되어 카메라를 제거하고 다시 접안렌즈를 달아 살펴봤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희한한 일은, 망원경으론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던 성운이 쌍안경으로는 잘만 보였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울며 열 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도 이슬 때문에 다 망쳐버렸다. 간신히 건진 사진이 이거 하나. 이게 어디냐면…. ‘아마도’ 석호 성운 근처의 은하수 안 쪽 일거다. ㅠㅠ

대실패Final

깨달은 것이 있다. 우선… 별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나처럼 일반 관측용이 아닌, 진짜 별 사진용 망원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고, 아주 정밀하게 작동하는 마운트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 다시 말해 돈 달라는 말이다. ㅠ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천체사진은 장비 싸움이라고 하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고, 난 돈이 없는데 제대로 찍어 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좀 지쳤다. 6개월째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건져서 너무 슬펐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좌절했다.
집에 돌아와서 남들은 무슨 장비를 쓰는지 알아보곤 한 번 더 좌절했다. 경통(렌즈가 들어있는 튜브)만 400만원이 넘는 걸 쓰고 계셨다. 아…아하…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KIN.

사진 찍는거 조금.. 쉬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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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말야…

그 사람은 겉에서 보면 참 부드럽고 착하고 인자한 사람인데, 그 속은 시꺼멓고 우울하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 본인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주위 사람들이 가까이 하는 것을 조심하는 편이야.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지.

결국 그 사람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 중에 하나와 함께 할 수가 있게 되었어.
가까이 하게 된 그 사람은 이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이것 저것 많은 배려도 해 주고 보듬어 주었지만 타고난 어둠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지라 옆에 있으며 점점 자신도 어둠에 빠져듦을 느끼게 되.

몇 차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그 사람은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이 자신의 어둠 때문에 고통받는 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리고 혼자 만의 삶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고.
그렇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혼자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쓸쓸하고 외로워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이 사람 저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되고 모두를 어둠에 물들게 만들어.

시간이 지나 온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힌 것을 알게 된 그 사람은 슬픔과 고통 속에 울며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떠나버려.

과연… 이 사람이 잘못한 걸까? 잘못 했다면 무얼 잘못한 것일까.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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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모처럼 당직을 섰다

4월 말에 합의된 대로 당직을 섰다. 종전의 당직을 설 때보다 심각하게 힘들었다.
무슨 말이냐면은, 전에 당직을 설 때도 몇 개월에 한 번 있을법한 바쁜 날이 첫 당직에 들이 닥쳤다는 것이다.
질병이 휴일을 타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휴일 따위는 무시하고 아픈게 정석인데, 여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휴일이든지 휴일 마지막 날은 응급실이 붐빈다는 것이다. 열 나는 사람, 머리 아픈 사람, 배 아픈 사람.. 특히나 휴일동안 무얼 그렇게 먹었는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배 아프다고 밀려 들어온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나 보다.

아침부터 대장의 염증(게실염이라는 병이 있다)으로 두 명을 입원시켰는데, 하나는 보통의 대장 염증이 아니라 살짝 빵꾸가 나서 국소 복막염이 되어버린 환자였고, 다른 하나는 보통의 게실염이었는데 입원하고 나서 갑자기 피가 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여차하면 수술 할 생각도 하고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드렸는데, 환자 보호자들이 전문분야가 대장/항문쪽인 전문의 선생님에게 치료 받고 싶다고 해서 몇 시간에 걸쳐 주위 대학병원에 전원문의를 했다. 거의 두 시간은 소비한 것 같다. 나도 이쪽 일을 하지만, 요즘 야간에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정말 없어서 전원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환자 보호자분과 상의해서 사설 앰블런스로 응급실에 그냥 들이닥쳐 버리는 방법으로 해결을 했다.
당장 이 환자 하나만으로도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아주 심한 화상 환자도 한 명 내원 해서 한시간 반에 걸쳐 혼자 드레싱(상처 소독)을 했고, 또 입원은 시켜놓고 환자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앞 뒤 안 가리고 무조건 화내는 노인 보호자분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정신 다 차리고 보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매 당직마다 이런 식이면 살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모처럼의 당직이었는데 첫 날부터 힘든 날 수준의 일이 쏟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 바로 퇴근하냐면 그것도 아닌지라… 첫 날부터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오전에 외래 봐야 하고, 오후에는 어제 입원한 화상 환자 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 끝나면 별 사진 찍으러 가려고 한다. 피곤할 텐데 사진까지 찍으러 가냐고 묻는다면, 이거라도 안 하면 삶이 너무 삭막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잠시라도 세상사를 잊고 하늘만 바라봐야지, 직장-집-직장-집만 하다보면 사람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그렇다.

하아.. 그나저나 대장/항문 외과 전문의가 없는 상황에서 야간 당직을 시작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싶다. 결국 한밤중에 문제 생겨서 오는 환자 대부분이 대장 쪽의 문제인데, 그 쪽이 커버가 안되는 상황에서 당직을 서봐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 이것 참…. 올 사람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쯧.. 그만 생각하고 일 한 다음에 별 사진이나 찍으러 가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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